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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국가』

플라톤
Plato



 사상의 시대적 배경

기원전 1200년 경 미케네 문명이 붕괴한 후 오랜 암흑시대를 겪은 그리스에서는 문자도 사라지고 경제정치 생활도 가족단위의 초보적 단계로 퇴보하였다. 호머(호메로스, Homer)의 서사시에 그려진 원시적 농촌세계가 바로 그것이었다. 도시형의 고전문명이 완만하게나마 비로소 구체화된 것은 그에 뒤이은 고졸기 그리스 즉 기원전 8~5세기였다.

고졸기 그리스의 특징
- 주로 시리아 및 동방과의 원격지 무역
- 화폐의 부분적 출현
- 페니키아에서 유래한 알파벳 문자의 탄생

그리스 본토와 해외에는 약 1,500개의 그리스 도시들이 세워지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해안선으로부터 내륙쪽으로 25마일 이상 떨어져 세워진 도시는 실제로 없었다. 이들 도시는 본질적으로 농민과 지주의 주거 중심지였다. 도시의 영토에는 늘 주변의 농촌이 포함되었고 거기에는 전적으로 농사만 짓는 주민들이 눌러살았다. 고졸기 그리스 도시들의 공식적 정치체제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이 체제가 도시 대다수 주민에 대한 세습귀족의 특권적 지배에 입각했으며 귀족만으로 이루어진 의회가 도시를 통치하는 것이 전형적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러한 전체 체제는 고졸기의 마지막 세기에 참주’(tyrant)가 등장함으로써(기원전 650~510) 붕괴되었다. 기원전 6세기의 참주정은 실제로 고전적 폴리스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전환점이었으며 그리스 고전문명의 경제적군사적 기초가 다져진 것은 대체로 참주들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참주는 통상 상당한 자산을 모은 신흥부유층 출신이었고 그의 개인적 권력은 그의 출신배경을 이루는 사회집단이 도시 안에서 명예와 지위를 손에 넣었다는 것을 상징하는 셈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의 승리는 일반적으로 빈민의 급진적 불만을 이용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했고 그들이 이룩한 업적 중 가장 지속적인 것은 민중을 위한 경제개혁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해서는 민중의 이해관계를 존중 내지는 용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참주 인용자 주)이 이룩한 업적 중 가장 지속적인 것은 민중을 위한 경제개혁이었다. 당대의 일반적 유형이라 할 수 있는 표본은 역시 아테네의 솔론(Solon)의 개혁으로, 기록도 가장 뚜렷하고 훌륭하다. 솔론은 참주는 아니었지만 기원전 6세기초 앗티카(Attica)에서 터져나온 빈부간의 격렬한 사회적 투쟁을 조정할 대권을 위임받았다. 그의 정책 중 결정적인 것은 부채로 인한 농민예속의 폐지였는데 이것은 이제껏 소토지보유농이 대지주의 제물이 되어 그들의 예속적 소작농으로 전락하거나 소작농이 귀족지주의 노예가 되는(것에 대한) 전형적인 방편이었다. 솔론의 개혁의 결과 귀족영지의 확장이 억제되고 이후 앗티카 농촌지역의 특징이 되는 중소규모의 농지유형이 안정되었다.

이러한 경제질서에 뒤이어 새로운 정치제도가 확립되었다. 솔론은 귀족의 관직독점에 쐐기를 박았는데 아테네의 전주민을 수입에 따라 4등급으로 나누어 상층의 두 등급은 고위정무관직에 취임할 권리를, 3등급에는 하급 행정직에 나아갈 기회를, 마지막 제4등급에는 민회에서의 투표권을 주었다. 이 민회는 이후 아테네의 정식제도로 굳어졌다. 이러한 조정은 오래가진 않았다. 이후 30여년간 아테네의 급속한 상업 발전으로 도시에 통화제도가 창안되고 국지적 통상이 증가하였다. 그에따라 시민단 내부의 사회적 갈등은 급속도로 재연악화되어 종국엔 참주 페이시스트라투스(Peisistratus)가 정권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아테네 사회구성의 최종적 틀은 이 참주의 치세기때 나타난다. 페이시스트라투스는 아테네의 농민에게 공공대부를 통해 직접적인 재정지원을 하였다. 이로써 중소농민의 존립은 견실한 토대를 갖추게 되었고, 고전적 폴리스의 자율성과 안정을 최종적으로 다질 수 있게 되었다. 이때 나타난 중대한 변화가 있다. 바로 군사조직의 변화가 그것이다. 참주정 시기에 군대는 기본적으로 호플리테스(Hoplites)라는 중장보병으로 구성되었다. 모든 중장보병은 무기와 무장을 자기 부담으로 갖추었기 때문에 여기엔 일정 생활수준이 전제되었고 실제로 중장보병의 군대는 항상 도시의 중산농민층에게서 충원되었다. 이들의 군사적 효율성은 다음 세기에 페르시아인에 대한 그리스인의 경이적 승리로 입증되는 바이다. 그러나 도시국가의 정치구조 내에서 이들이 중추적 위치를 차지한 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했으니, 뒷날에 보는 그리스의 민주정또는 확대된 과두정의 전제조건은 스스로 무장한 시민보병이었다.

참주의 토지입법이나 군제개혁이야말로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 폴리스의 터를 닦은 것이었다. 그러나 고전적 그리스 문명이 탄생하는데는 더욱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혁신이 필요했다.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동산노예가 대대적으로 도입된 것이었다. 비교적 평등주의적인 농민공동체가 도시에 단순히 물리적으로 모이는 것은 가능했으나, 이 공동체가 그 소박함을 유지한 채로는 앞으로 고대세계 처음으로 꽃 피어날 눈부신 도시문명을 창조할 수는 없었다. 거기에는 새로운 시민적지적 세계를 건설할 수 있도록 지배층을 해방시켜줄 예속적 잉여노동의 보급이 필요했다. 독립농민이 구제되고 채무에 의한 인신예속이 폐지된 뒤 곧이어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고전기 그리스에서 노예사역이 새삼 급증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고전기 폴리스의 토대는 노예제라는 체계적 장치에 의해 지탱되는 새로운 자유 개념의 발견에 있었다. 자유로운 시민이 노예노동자들을 배경으로 비로소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나타난 것이다. 고전기 그리스 최초의 민주적제도는 기원전 6세기 중엽 키오스(Chios)의 기록에 남아 있는데 전승에 따르면 동방에 있는 만족으로부터 대량으로 노예를 수입한 최초의 도시국가 역시 바로 키오스였다고 한다.(M.I.Finley, The Ancient Greeks)

에스파냐부터 크림반도까지 산재한 소국들로 이루어진 그리스 체제는 기록상 가장 성공한 도시 국가 체제였다. 이 폴리스들은 600만 명을 부양했고, 놀라운 경제 성장을 향유했으며, 무척 매혹적인 문화를 창조했지만, 로마의 군사력과 경합할 수는 없었다.”(옥스퍼드 세계사)

전근대 시대에 국력을 보여주는 척도는 바로 군사력이었다. 군대는 기본적으로 생산과 괴리되어 있다. 농촌에서 나오는 생산력을 바탕으로 군()을 포함한 전사회가 재생산되어야 했기 때문에 전근대의 군사력이라는 지표가 갖는 의미는 생산성 일반을 모두 집약한 것으로 확장하여 이해할 수 있다.

‘demos’는 지연적 원리에 따른 집단조직을 의미한다. 기원전 508년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으로 귀족의 보호관계에 이용되기 쉬운 구래의 부족적 주민구분을 폐지하고, 지리적 단위로 재편성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민주주의라는 말도 여기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데모스 제도를 통해 장군 이외의 모든 관직이 시민들의 추첨으로 선출되기에 이르렀고, 정치적 의사결정을 하는 민회뿐 아니라 시민이 참여해서 판결을 내리는 민중재판까지 더해져 아테네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

 

플라톤 정치사상의 세 가지 동기와 소크라테스의 변론그리고 크리톤

세 가지 동기

영혼의 돌봄

민주정에 대한 반성

논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즉 지성을 갖춘 인간의 재생산

 

소크라테스의 변론

소크라테스가 고발당한 내용에 대해 변론한다. 여기서 그는 고발 항목들 하나하나를 거론하며 그것이 얼마나 어이없는 고발인지를 논박한다. 그러한 반론은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수동적 목적이 아닌,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고발인들과 시민들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영혼을 돌볼 것을 촉구한다.

민중재판의 과정 속에서 플라톤은 민주정이란 명분 아래 정당화되는 제멋대로 할 자유’(=방종)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된다. 이것은 흥미롭게도 헤겔의 프랑스혁명에 대한 반성적 회고와도 유사한 지점이 있다. 그렇지만 프랑스혁명이 나타내는 절대적 자유는 플라톤의 그것과 곧바로 등치되는 것은 아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의미하는 바는 철학국가의 대립을 해소하는데 실패하였다는 것이다.

 

크리톤

변론이후 소크라테스의 처형날짜가 임박해 오던 때를 그리고 있다. 그의 친구이자 재산가인 크리톤(Kriton)은 감옥을 탈출해 망명할 것을 권유하며 소크라테스를 설득하려 하지만, 이를 거절한다.

계약이론의 선취로 보는 관점: 오트프리트 회페는 이 텍스트를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가 주창한 사회계약론을 선취한 것으로 보았다. 발제자가 읽어보았을 때 그것은 일리 있는 의견이라 보여진다. 공동체는 본원적으로 주어지는 것이고, 개인은 공동체 속에서 확립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 역시 존재한다. 고대 사회의 공동체와 오늘날의 공동체가 다른 성격을 지녔는데, 오늘날의 관점에서 고대의 그것을 해석한다면 그 역시도 왜곡된 해석일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홉스의 계약(Contract, Leviathan, Part. I, Chap. 14)
1) 이론적으로 구축하고자 하는 “Common Wealth”를 정당화하기 위한 방법론적 출발점으로서 개인이 정치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작용하는 기제
2) 내란으로 인해 극단적으로 불안정한 사회상황이 초래되어 가족이나 집단의 유대가 해체되고 단신의 개인만 남은 시대(이른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 개인의 안전을 위한 최선의 방책으로서의 공권력(Common Power)을 세워야 할 필연성에 대한 정당화.

변론시민불복종의 텍스트로 해석한다면, 크리톤변론의 관계는 상당히 모순되어 보인다. ‘국가에 대립하여 사형을 선고받은 소크라테스가 크리톤에서는 불복종의 정당화는 가능하지 않다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발제자는 다음과 같은 해석을 제안한다. 두 텍스트의 관계를 반복으로 읽어내는 것이다. 앞서 변론에서 철학-국가의 대립을 해소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이것은 실패하고 만다. 이후 크리톤에서 다수의 판단을 대변하는 크리톤이 소크라테스에게 설득당하며 철학-국가의 대립이 비로소 죽음으로 해소된다. 플라톤의 텍스트를 이런 식으로 해석해 보았을 때, ‘다수의 판단을 대변하는 국가제멋대로 할 자유’(=방종)를 행하는 주체이다. 처음에 일관되지 않은 태도로 보였던 소크라테스는 이런 관점 속에서는 상당히 일관된 태도를 고수하는 것처럼 보인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으로써 아테네에 만연한 방종에 경종을 울리려는 시도를 했던 것이다.

 

파르메니데스, 형상-현상의 관계 설정

파르메니데스와 제논이 젊은 소크라테스를 만나 일자여럿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논의 논증: ‘여럿을 진리로 두었을 때, 그것에서 도출되는 모순을 보임으로써 일자를 옹호하려 한다.(귀류법) 하지만 논증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으며, 소크라테스 역시 이 지점을 지적한다. 제논의 변증법이 파르메니데스의 일자와 직접 관련을 맺고 이를 성립시킨다고 할 경우, ‘여럿의 규정으로부터 상호보완적으로 나타나는 일자역시도 부정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참여(관여): ‘일자여럿이 협조 관계에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는 전체와 부분의 관계를 함축하는데, 이 전체-부분의 관계는 이중적이다. 대립(차이성)과 상보성(동일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참여 이론에 대한 파르메니데스의 비판이 제시된다. 형상의 가분성, 양적 논리, 기능(dunamis)에 대한 논의, 3자에의 논증 등으로 전개되며 형상론을 비판한다. 이는 소크라테스가 스스로의 형상론을 옹호할 수 있는 훈련이 되어있는지 검토하려는 목적이다.

형상론 비판에서 문제되었던 것은 형상의 다수성, 형상의 초월성, 그리고 제3자 논증에 의해 비판되는 형상존재와 관련하여 나타나는 신과 같은 인식기능(dunamis)의 존재성격이었다. 이 문제는 제2 가정, 동등-비동등의 증명과 시간을 세 번째로 다루자고 한 곳에서 플라톤이 해결을 내놓는다. 형상들은 우리의 사유기능에 관계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제1 가정의 일자가 보여주듯, 한편으로 형상의 절대적 초월성이 부정된다. 다른 한편으로 형상의 절대적인 초월의 성격을 대신하는 신()관념이 나타나고, 이 신은 국가에 나오는 선의 이데아와 같은 성격을 지닌, 모순적인 기능을 발휘하는 절대적인 것이어야 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신의 절대성은 모순적인 것으로서 존재할 수 없거나, 존재한다면 형상들의 다수적 존재가 허용된 마당에 제1 가정의 파르메니데스의 일자와 같은 비시간적 존재로서가 아니며 또 꼭 하나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어야 한다.

1 가정은 파르메니데스의 일자를 전제한다. 이것은 원자적 일자로서, 전체-부분 논리에 따르는 여럿의 세계와 완전 무관한 것이다. 따라서 경험인식될 수 없으며, 시간성에 참여하지 않는다.

2 가정은 시간성 속의 존재(ousia)=일자라는 결합을 전제로 한다. 여기서 시간성 속의 존재란 시간을 이루는 존재와 생성이 결합된 것을 말한다. 서로 반대되는 동일성과 타자성의 기능(dunamis)을 함축하는 존재가 된다. 2 가정 아래의 존재의 의미는 현재라는 시간 안에서 존재에 참여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시간성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시간은 흐르는 것이다. 시간에 참여하여 흐르는 일자는 항상 자신보다 늙어간다. 다시말해 생성 가운데 있는 일자는 전면적으로 자신보다 보다 젊어지고, 또 늙어간다. 그런데 일자는 생성 가운데 있을 때 과거와 미래 사이에 있는 현재 시간 안에 있고 이 때는 생성을 멈추고 존재한다. 즉 생성 속에 현재라는 존재가 부분적으로 끼어있다. 그러므로 모든 생성하는 것이 현재 순간을 피할 수 없다면, 사물들이 현재에 있을 때 생성을 떠나고 우연적으로 생성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일자는 보다 늙어지면서 지금을 만나게 될 때 생성을 멈추고 그때에는 보다 늙어 있다. 또 생성의 상대성에 의해 젊어지고 젊어 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일자는 그 존재 전체를 통해서 지금 이 순간 현재해있다. 일자는 항상 자신보다 늙고 젊어 있으며 늙어지고 젊어진다. 이처럼 일자는 생성(운동)과 존재(정지)가 전체-부분적으로 교차하면서 경우에 따라 시간적 존재에 참여한다. 시간성은 존재의 측면과 생성의 측면이 서로 구분되는 듯하나 상호 보완적이며, 존재의 동일성의 기능과 생성의 차이성의 기능이 서로 구분되나 생성에서 이 기능들이 상호 교환된다. 2 가정에서 일자 존재에는 동일성에서 성립하는 상대적으로 불변하는 측면과 타자성에서 성립하는 상대적으로 변화하는 측면이 동시에 있다. 양자는 상호적으로 독립되기도 하고 침투되기도 한다. 또 서로 대립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상호 보완적으로 유기적 전체를 이룬다. 그래서 일자존재는 시간적 순서에 따라 모든 방식으로 생성하면서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일종의 구조적 전체를 이룸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논리적 사유에 나타나는 형상들의 세계와 현상계, 그리고 이 두 세계의 관계맺음에서 드러나는 모순과 딜레마는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에서처럼 극단적인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딜레마들은 사유의 변증법적 기능에 의해 극단적인 모순관계에 있지 않고 일정한 정도와 질서를 지니고 서로 관련되어 있어서 유기적이며 구조적인 전체를 이루고 있다. 즉 형상들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서 생성계를 구제하려는 플라톤의 존재론적인 변증법은 현실적으로 시간성을 매개하는 사유기능(dunamis)의 창조적 성격에 기초되어 형상론의 딜레마를 통합하고 모순을 극복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파르메니데스의 형상은 그 자체로서 타자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그럼으로써 자기동일성을 확보하는 그런 고고한 존재였다. 경험계의 물상들이 타자와 관계하면서 영향력을 주고받는 존재인 반면, 형상들은 자체적자족적으로 존재하는 단순체였다. 이들에 대해서는 그러므로 명명만 가능하고 문장은 언명될 수 없다. 이들에 관해 합법적인 유일한 문장은 삼각형의 형상은 완전한 삼각형이다.”와 같은 자기 서술적이고 동어 반복적인 문장뿐이었다.

반면 플라톤이 도입한, 가능태(dunamis)는 형상들과 결합하거나 결합하지 않을 능력을 제시한다. <사과, 달콤함>이라는 두 쌍의 형상들은 사과는 달콤하다라는 문장으로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는다. 사유 기능에 의한 변증법적 방식에 따라 존재는 시간성 속에서 동일성과 타자성의 기능(dunamis)을 함축하고 있다. (dunamis)

파르메니데스는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당연한 명제의 진리를 자연철학자들에게 확인시키면서, 이 대원칙을 위배하지 않고서는 현상계 구제의 작업을 시도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그에 따르면 일자(一者)는 일자이고, ()는 다이며, 단순한 것은 단순한 것이고, 복잡한 것은 복잡한 것이며, 운동은 운동이고, 정지는 정지이다. 그는 철저한 비환원주의자이다.

제논의 논리적 역설은 파르메니데스의 권위적 선언을 좀더 정치(精緻)한 논리로 우리에게 설득한다. 논리의 세계와 경험의 세계는 결코 화해할 수 없다. 화살은 날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그런 사태는 감각적으로 경험되는 것일 뿐, 논리적으로 입증될 수 없다. 다라서 감각적 경험의 사실을 실재의 사실로 받아들여 화살이 왜 나는지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없는 문제를 만들어 해결하려는 불필요한 노력이다.

반면 플라톤은 인간의 대지에 발을 붙이고 서 있었다. 그는 과감히 부친살해를 감행하여 파르메니데스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 무()를 일종의 존재로 실재계에 수용함으로써 철학적 금기를 깨는 과감함을 선보였다. 나아가 그는 일자만이 유아독존적으로 거하고 있는 신성한 실재계의 인구 수를 대폭 증가시켰으며, 하찮은 것들에도 이 실재계 시민의 자격을 부여하였다.

플라톤의 뒤나미스(dunamis) 개념은 논리적 사고의 세계와 경험적 행위의 세계 사이에 놓여 깊은 심연을 가로지르는 교량이 되어준다. 파르메니데스가 우리에게 설파한 바와는 달리 A=A 이고 A~A인 것이 아니라, A=~A가 될 수 있어야 한다.

 

플라톤 국가-政體요약, 좋은 삶이라는 이데아

서론과 문제제기: 올바름에 관한 의견들

국가-政體에서 대화가 이루어지는 장소는 아테나이와 성벽으로 이어진 항구 페이라이에우스(피레우스)에 있는 폴레마르코스의 집이다. 그곳에서 주인공 소크라테스는 느닷없게도 올바름에 관하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단순히 나누는 정도가 아닌, 격렬한 논쟁으로 이어진다. 항구에서 벌어진 축제를 구경한 다음 그렇게까지 논쟁을 벌였던 이유는, 이것이 당시에 시급한 문제로 취급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노년에 들어선 케팔로스와 그의 아들 폴레마르코스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터득하고 전통적으로 이어받은, 올바른 삶에 관한 자신들의 신념을 내놓는다.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어렵지 않게 깨뜨린다. 그들이 무너지는 것을 본 소피스트 트라쉬마코스는 위협과 비아냥을 뒤섞은 강력한 논증으로 소크라테스에게 도전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하나하나 논박해 나가며 결국 올바름에 관한 논쟁에는 다양한 주제들이 뒤섞여 있음을 알게 된다. 이로써 대화가 끝나는 듯 했으나 플라톤의 형제들인 끌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가 아주 진지한 태도로 제기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기나긴 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공동체의 구성과 올바름

올바름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소크라테스와 대화 참여자들은 최소한의 필요를 충족시킨다고 하는 단순한 목적으로 결합된 집단에 관한 논의부터 시작한다. 그것에 이어 본격적인 정치적 공동체를 상상해보고 그 나라를 지키고 다스리는 사람들이 어떤 성향의 사람들이어야 하는지, 그 사람들은 반드시 무엇을 알아야만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플라톤의 본격적인 구상이 제시된다. 플라톤이 수호자라 부르는 이들은 시가와 체육을 통하여 혼의 조화에 이른 상태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된다.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수호자들은 사적인 관계를 모두 배제하고 공동체와 전면적으로 하나가 된 일종의 통치기구로서 거듭난다. 이 과정에 형이상학적 논변들이 덧붙여지기는 하나 그것은 핵심적인 부분은 아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의 사적인 이익이 충돌하는 아테나이 민주정에서 절실하게 요구되었던 추상적 권력 기구의 필요성과 그 성격에 대한 플라톤의 통찰에 주목해야 한다. 국가-政體는 공동체를 통치하는 이들에 관한 논의에 집중하지만, 내용상 연결되는 부분에서는 공동체 대다수의 구성원들, 많은 사람의 상태에 관한 논의가 길게 제시된다.

 

공동체의 궁극적 근거와 철학적 정치가

정치적 제도와 장치가 없다면 인간의 삶에는 질서가 세워지지 않는다. 모든 이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자연적 공동체야말로 허망한 이상이다. 정치적 제도와 장치는 필연적으로 지배와 예속의 관계를 불러온다. 이 관계를 없애고 모든 이가, 많은 사람이 지배자가 되는 것이 민주정 체제일 것이지만 그것은 모든 이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교훈을 가져다 준다. 모두가 그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데만 골몰한다면 끝내 파멸에 이르고 말 것이다. 플라톤은 정치 권력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도 그것에 대한 반성적 통찰과 도덕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방안을 궁리한다. 그것이 바로 정치 권력과 철학의 합치라고 하는 역설적 주장이다. 앞서 플라톤은 정체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공동체적 인간인 수호자들의 양육에 대해 설명했다. 그들은 사적인 이해관계에 전혀 얽히지 않고 어김없이 공동체의 일을 위해 헌신한다. 그들의 업무 수행 능력에는 문제가 없지만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수 없다. 여기서 다른 종류의 통치자가 요구된다. 이제부터 소크라테스는 대화 상대자들과 함께 철학자는 무엇인지, 철학자가 당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렇게 함으로써 철학자가 정치가로 변화하여 어떤 통치를 할 수 있는지를 모색한다. 철학과 정치의 통일을 이룬 인간, 즉 철학적 정치가에게는 수호자들과 다른 종류의 교육이 필요할 것이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공동체의 본을 만들기 위한 신적인 앎을 가져야 할 것이고, 그 앎을 가지고 현실 정치에 가담해야 할 것이다. 공동체와 합치된 기계적 인간에 지혜를 덧입힌 인간이라 할 철학적 정치가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는 국가-政體의 둘째 부분은 흔히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플라톤이 최선을 다해 현실화하고자 하는 체제의 구상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쁜 상태의 네 가지 정체와 시민들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논의 가담자들은 본래 나쁜 상태의 네 가지 정체에 대하여 논의하려 한다. 그때 폴레마르코스와 아데이만토스는 소크라테스의 말허리를 꺾고 처자 공유와 관련하여 그 방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을 요구한다. 이에 대답하고자 소크라테스는 공동체의 조직 형태를 논의하였고, 그에 이어서 훌륭한 나라의 본과 철학적 정치가까지 이야기하게 된 것이다. 글라우콘은 이제, 그때 중단되었던 논의를 상기시키고 계속해나가길 요구한다. “선생님께서 네 가지 정체로 어떤 것들을 말씀하시려 했는지 저로서는 어쨌든 직접 듣기를 바랍니다.”

소크라테스는 네 가지 정체(政體)를 열거한다. “그 하나는 많은 사람한테서 칭찬을 받고 있는 것으로서, 크레테 및 라코니케 식 정체가 이것일세, 그리고 둘째 것이며, 버금가는 것으로서 칭찬을 받고 있는 것은 과두 정체라 불리는 것으로, 많은 나쁜 것으로 가득 찬 정체일세, 이것과는 화합하지 못하는 것으로서, 그 다음에 생기는 것은 민주 정체이네. 그리고 그야말로 특출한 참주 정체는 이 모든 것과도 판이한 것으로서, 나라의 넷째 것이며 말기적인 질병일세.” 소크라테스는 이 밖에도 세습군주제들 및 매관매직의 왕정도 거론하지만 집중적으로 앞의 넷을 이야기하려 한다. 여기에서 소크라테스는 나라의 형태와 개인들의 혼의 상태가 상응한다고 언급하면서, 나라의 형태를 논한 다음에는 그 정체에 따라 생기게 된 사람”, 그 정체를 닮은 사람을 언급하는 순으로논의하자 한다.

소크라테스와 글라우콘은 정체의 변화가 일어나는 방식을 이야기한다. 소크라테스는 변화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혹시 이 점은 단순명료한 것인가? 즉 정체(politeia)가 바뀌는 것은 관직을 장악하고 있는 집단 자체에서 모두가 비롯되는 것이고, 이는 그 집단 안에서 내분(stasis)이 생길 때라는 것이 말일세, 반면에 이 집단이 한마음 한뜻일(homonoein) 때에는, 그것이 아주 소수로 이루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변혁될 수가 없겠지?” 소크라테스는 내분이 정체 변혁의 원인이라 말하면서도 그 내분이 무엇 때문에 이렁나는지를 더 탐색할 뜻을 글라우콘에게 내비친다. 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에게 원인을 물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무사(Mousa) 여신들에게도 묻는다. 소크라테스가 무사의 입을 빌려 제시하는 설명은 다음과 같다. “생성된 모든 것에는 쇠퇴(phthora)가 있기에, 이와 같은 구성(systasis)도 영원토록 지속되지는 못하고, 해체되리라. 그 해체는 이런 것이니라. 땅속에 뿌리를 내린 식물들만이 아니라, 땅 위의 동물들에게 있어서도 혼과 육신의 풍요로운 생산과 불임 불모의 시기가 있으니, 이는 각각의 것들에 있어서의 순환들이 그 주기를 채우게 될 때마다 있느니라. 그 주기는 수명이 짧은 것에는 짧되, 그 반대인 것들에는 반대이니라. 이 기하학적인 수 전체가 더 나은 출생과 더 못한 출생을 좌우하는 것이니, 그대들의 수호자들이 이런 출생들을 알지 못하고서 적기가 아닌 때에(para kairon) 신부들을 신랑들과 동숙케 할 때는, 훌륭한 성향도 행운도 타고나지 못한 아이들이 태어나리라, 이들 가운데서 선발된 통치자들은 헤시오도스와 그대들에게 있어서의 종족들을, 즉 황금족과 은족, 청동족, 그리고 철의 종족을 감별함에 있어서 수호자 구실을 그다지 잘 수행해 내지 못하게 될 것이니라. 철과 은, 청동(구리), 그리고 금이 함께 섞임으로써 닮지 않은 상태와 조화롭지 못한 불규칙성이 생기게 되고, 이것들이 일단 생기게 되면, 그곳이 어디건, 거기에는 언제나 전쟁과 적대심을 낳으리라.” 글라우콘이 우리로서는 여신들이 말한 것이 옳다고 하며 이 설명에 수긍하자 소크라테스는 네 가지 정체에 관하여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다.

네 개의 정체들은 연속체(continuum) 속에 있다. 이는 정체들이 유지되는 형식적 원리는 똑같은데 그 체제 안에서 특정 요소가 지나치게 많아지면 불완전성의 정도가 좀더 강해짐을 의미한다. 라코니케 정체의 형식과 내용이 완전히 달라져서 과두 정체가 되는 것이 아니다. 라코니케 정체의 특정 부분이 불거져 상태가 나빠지면 과두 정체로 이행하는 식이다. 플라톤이 라코니케 정체(스파르타 정체)를 이상적인 것으로 찬미했다고들 하는데, 라코니케 정체에도 이미 피해갈 수 없는 문제가 내재되어 있었다. 바로 재물에 대한 탐욕이 그것이다. 이것은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555b)인데,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는 그것을 내리누르고, 과두정에서는 그것을 은밀히 추구하며, 민주정에 가서는 만인이 그것을 추구하고, 참주정에서는 그것을 추구해줄 사람을 광적으로 찾아내서 지도자로 세운다. 다시말해 이 연속체 안에는 욕망이 들어있다. 따라서 특정 정체를 비판하는 논리는 앞서의 정체를 비판하는 논리의 연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최선자의 정체 이후 처음으로 등장하는 체제는 명예 지상 정체이다. 이 과정에서는 철과 청동의 성분을 갖춘 두 부류황금 및 은의 성분을 갖춘 두 부류사이의 다툼이 일어난다. 앞의 부류들은 “[정체를] 각기 돈벌이와 토지, 가옥, 금은의 소유 쪽으로끌어당기지만 뒤의 부류들은 본성상 가난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부유해서, [사람의] ‘훌륭함’()과 옛날의 체제 쪽으로이끌게 된다. 이 두 부류들 사이의 다툼은 중간선에서 합의에 이르지만, 그들은 땅과 집을 분배하여 사유화하고 그들이 돌보아 주던 이들을 노예들로 만들어 예속인들로 그리고 가노들로 만들고 이는 사유재산으로 귀결된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이 정체는 최선자 정체와 과두 정체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통치자들을 존중하고 또한 이 나라의 전사 집단으로 하여금 농사와 수공예 및 그 밖의 돈벌이를 멀리하게 하는 한편으로, 공동식사(syssitia)가 마련되고 체육과 전쟁 훈련에 마음을 쓰는부분이 최선자 정체와 닮아있고, “재물에 대해 욕심을 내는 사람들로 될 것이며, 비밀히 금과 은을 끔찍이 우러러모시는 점은 과두 정체와 닮아있다. 하지만 이들은 승리에 대한 사랑과 명예에 대한 사랑만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사람들이므로 아직은 재물에 대한 사랑을 노골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이 체제에서 사회를 통합하는 기제는 승리에 대한 사랑명예에 대한 사랑이다. 하지만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여기에서는 재물 욕심이 겉으로 드러나게 되면 내분이 생겨나고 사회를 통합하는 기제는 붕괴되고 만다. 플라톤이 수호자들에 대해 논의할 때, 가족의 해체와 재물의 공동 소유를 이야기한 까닭은 바로 이런 상태 때문이다.

명예 지상 정체 다음은 과두 정체(oligarkhia)이다. 이 정체에서는 부자들이 통치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통치에 관여하지 못한다. 명예 지상 정체가 재물에 대한 욕심을 은밀히 갖고 있었다면 과두 정체는 아예 드러내놓고 재산을 평가한다. 다시말해 과두정에서의 사회 통합 기제는 이 된다. 사회 전체가 분열되어 있을지언정 돈을 매개로 하나의 사회를 구성할 수 있던 것이다. 후대의 역사에서 과두 정체의 사례를 들자면 미합중국의 상원이나 로마 공화정의 원로원을 들 수 있다. 로마 공화정은 과두정에서 생겨난 문제들을 끝내 해결하지 못하고 카이사르나 아우구스투스의 참주정으로 귀결되었다. 민주정을 거치지 않았을 뿐이지 욕망의 무차별 확대라는 근본 문제속에서 참주정으로 이행해버린 것이다. 아테나이도 페리클레스 시대의 민주정에서 참주정으로 이행한 바 있다. 투퀴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언급했듯, 페리클래스 시대에 이미 대중의 추동력을 원천으로 삼는 참주정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과두 정체가 가지고 있는 현실적 문제는 대중 폭동이 있다. 과두 정체에서 금권 정치가 극단적인 상황까지 치닫게 되면 완전한 무산자가 늘어나게 된다. 헬라스 세계에서 자유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반드시 필수 자산이 필요했다. 그것은 원래의 배분 자산’(arkhaia moira)이라 불리던 것인데, 이를 처분하는 것은 스파르타를 제외한 여러 폴리스에서 불법으로 간주되거나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었다. 아테나이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이는 군사민주주의적 성격을 띄던 아테나이 시민의 전제조건, 스스로 무장한 시민보병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금권 정치가 성행하며 배에서 노를 젓는 수병들처럼 품삯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그들 무산 대중은 체제 불안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으로 모든 것이 판단되는 과두 정체가 전개되며, 무산자가 늘어나고 재산은 부유한 소수에게 집중되었다. 돈을 기준으로 하나의 사회를 구성했지만, 궁극적으로 돈이 없는 가난한 다수로 하여금 더 이상 돈에 매달려 있을 필요성을 못 느낄 정도로 사회를 해체시키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다수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exousia)를 추구하는 자유로운 세계, 민주정체가 과두정 이후에 나타나게 된다. 이 민주정체에서는 더 이상 돈조차도 객관적인 기준으로써 기능하지 못한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가 원하는 바대로 행동하기 시작할 뿐만 아니라 그 각각의 개인이 모두 각자 옳은사회가 되어버린다. 다양성이 넘치는 사회는 겉보기에 화려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다원성이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플라톤이 보기에 이러한 민주정체는 궁극적으로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의 조화로운 관계의 수립을 어렵게 만든다. 인간의 욕망에는 끝이 없는데 무엇이든지 다 제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린다면, 그것의 끝에는 끊임없이 유동하고 변화하는 대중의 욕망을 채워줄 수 있다 주장하는 참주의 지배가 자리하게 된다. 재밌는 점은 마르크스의 저서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에서 프랑스 혁명 이후, 민주정에서 등장한 참주 루이 보나파르트를 분석하는 마르크스의 분석을 플라톤이 선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계급투쟁을 강조했다면, 플라톤은 인정투쟁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겠다. ‘욕망의 평등성에 기초한 불만이 참주의 출현을 낳는다고 지적하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재밌어 보이는 관점이라 이를 덧붙인다.

민주 정체에서 등장하는 대중영합적 선동가는 그 선동성이 강력하면 할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는다. 그는 아주 잘난 사람이다. 그가 다름 아닌 참주다. 민주정에서 부유한 자와 가난한 이들의 대립이 격렬해졌을 때, 가난한 이들의 대변자로서 선동가가 등장하고 그가 대중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민주정체는 참주 정체로 이행하게 된다. 참주는 아테나이의 페이시스트라투스처럼 지주 귀족의 압제에 맞서는 비교적 자비로운 인민의 옹호자일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페이시스트라투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참주는 지주들의 권력을 빼앗아 민주정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는데 이때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것은 재산이다. 부에 대한 만족할줄 모르는 욕망과 돈벌이의 자유가 개개인의 가정들에 스며들며, 마침내 민주정의 무정부 상태에 이르게 된다. 공동체의 삶은 최소한의 법률을 요구한다. 즉 공동체의 유지를 위한 굴종이 필요한 것이다. 이 굴종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끝없는 욕망을 행사하는데 방해되는 모든 법률을 제거해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하면 법이 무력화되는 단계까지 치닫는다. 바로 이 상황이 참주 정체가 자라나게 되는 그리도 잘나고 활기찬 시작이다.
참주 정체의 이행 과정에서 선동가에게 이끌리는 대중은 군중’(okhlos)이라 불린다. 기본적으로 대중선동가에게 대중들이 이끌릴 수밖에 없는 이 과도기의 민주 정체에서 정치가들은 어떤 의미에서건 대중영합주의자(포퓰리스트)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정치가들은 법을 준수하는 사람들이지만, 법을 어기고 대중의 격렬한 지지를 바탕으로 무언가를 하게 되는 지점, 즉 선도자가 되면 참주정으로 이행하게 된다. 즉 선도자는 참주로 변화하게 된다.

 

참된 올바름과 궁극적 보답

폴리스의 정치 체제에 관한 논의에 집중했던 플라톤은 다시 올바름은 이득이 되는가’, ‘올바르게 산 사람은 행복한가라는 주제로 돌아온다. 앞서 네 가지 정체를 따져보며 정체의 성격과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성향이 어느 정도 상응한다는 논의를 펼쳤었는데, 국가-政體의 첫 번째 논의인 올바름은 이득이 되는가를 답하기 위해 보다 큰 스케일인 한 나라에서의 올바름을 따져보자는 소크라테스의 제안으로 이 기획은 시작된 것이었다. 그렇게 따져보니 나라에는 여러 정체가 존재하고 있었고, 그 중에서 참주 정체가 가장 불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사람은 비참하다는 것이 논의가 전개되며 증명된 것이다. 인간이 즐거움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즐거움이란 실상 좋음의 구현 속에서 적절한 삶의 균형을 이룰 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끝없는 인간의 욕망 속에서 즐거움은 종류가 다양하고 객관적 기준을 잡기 어렵기 마련이다. 때문에 플라톤은 올바름을 기준으로 삼으려 한다. 올바름을 기준으로 제시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하게 되는 것일까? 플라톤은 첫째로 혼의 상()을 말로써 형상화 해보자고 제안한다. “올바른 것들을 행하는 것은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자에게겉모습은 사람이지만 안에는 서로 다른 짐승과 사자 그리고 사자와 관련된 것들이 있는 형상을 제시하자고 한다. 이것들이 내부적으로 서로 물어뜯으며 싸우다가 서로 잡아먹게 되는, 자신의 내면을 이성의 지배 아래에 두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제시하여 그들을 설득하자고 말한다. “반면 올바른 것들이 이롭다고 주장하는 자, “내부의 인간이 이 인간을 최대한 장악하게 되며, 많은 머리를 가진 짐승을, 마치 농부처럼, 유순한 머리들은 키우고 길들이되, 사나운 것들은 자라지 못하게 막아가며 보살피게 되는 한편으로, 사자의 성향을 협력자로 만들어서 공동으로 모두를 돌보며, 서로들 그리고 자기 자신과도 화목하도록 만드는 그런 방향으로 조장하는 것들을 주장하게 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다른 방식의 설득도 제안하는데, 우선 인간 내면에 있는 혼의 부분들이 비난받는 이유를 글라우콘에게 제시한다. 그는 이러한 비난을 막을 수 있는 방책으로 최선의 인간(ho beltistos)을 지배하는 것과 닮은 것에 의해서, 지배받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가 저 최선의 인간이며, 자신 속에 신적인 지배자(to theion arkhon)를 가진 인간의 노예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내놓는다. “신적이며 분별 있는(슬기로운) 것에 의해서 지배받는 것모든 이의 협력자인 법(nomos)”에 의해 지배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플라톤의 기획에서는 이후 정치가법률을 거치며 좋음이라는 이데아가 철학자(哲人)=정치가=참된 치자(治者)를 매개로 현실에서 이상적 법률에 가까운 현실적 법률로 구현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삶의 적절한 균형을 구현하는 자로서 만드는 이가 구체적 층위에선 철인, 정치가로 우주적 차원에서는 신과 같은 초월자로 나타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글라우콘은 지상에 존재하지 않고 이론상으로 성립하는, “하늘에 본(paradeigma)으로서 바쳐져있는 나라를 보고서 자신을 거기에 정착시키고 싶어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써 정체(政體)에 관한 논의를 끝마친다.

 

정치가법률의 핵심적 내용

정치가

정치가는 엘레아에서 온 손님이 대화를 주도하고 소크라테스는 곁에 물러나 있다. 여기서는 신들의 뜻을 전해받은 목자의 통치가 먼 옛날에 있었음을 알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얼마 안있어 폐기된다. 정치가가 알아야 하는 지식(또는 기술)이 거론된다: 장군(전쟁술), 연설가(설득술), 법률가(입법술). 정치가는 이 모든 것들을 종합적으로 알아야만 하나 무엇보다도 적절한 때’(kairos)를 알아야 한다. 여기에 더해 성문법의 역할이 강조된다. 성문법의 강점은 그것이 확고한 통치규준이라는 것이고 약점은 유연함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치가에 등장하는 정치가는 정치적 앎’(epistēmē politikē), 즉 공동체의 기초를 대상으로 하는 앎, 규범적 국가론에 대한 앎을 가진 자이다. 플라톤은 이를 왕의 직조술에 비유하고 있다. 정치적 앎이란 공동체의 운영에 필요한 모든 앎을 함께 짜넣는것이기 때문이다.(305e) 고대 헬라스에서 법률은 경직된 규칙이었으므로 플라톤이 비판하듯이 각각의 상황에서 무엇이 최선인지를 알고 그때그때 알맞게 무엇인가를 조절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적절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러한 판단은 크로소스의 시대와 제우스 시대에 대한 신화(268d-274e)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사는 시대는 신적인 질서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진정한 의미의 정치가만이 정치적 앎을 통해서 신적인 것에 가까운 질서를 회복할 수 있다는 데에 기인한다.

 

법률

법률은 크레테에 새로 세워질 마그네시아’Magnēsia라는 가상의 나라의 입법을 위임받은 크레테 사람 클레이니아스Kleinias와 그의 초청을 받은 아테나이 사람(이는 플라톤을 체현한 것으로 추측된다), 라케다이몬 사람 메길로스Megillos, 이렇게 세 사람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플라톤은 앞의 두 대화편들에서 논의되었던 계획과 기술들을 수정 보완하여 실현가능한 모형을 제시한다. 철학적 통치자의 교육과 자질에 집중하였던 국가-政體정치가와 달리 폴리스의 전 영역에 걸쳐 현실정치를 실행하는 방안이 상세하게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법률에서 주장하는 법은 강제적 차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법의 궁극적 원천은 신[“여러분! 신이야말로, 옛말에도 그렇듯이, 존재하는 것들(ta onta) 모두의 시작과 끝 그리고 중간을 쥐고 있어서, 자연[의 법칙]에 따라 순환하면서 곧장 그 여정을 완결합니다. 한데, 그를 언제나 동반하는 것이 정의의 여신(Dikē)이니, 신성한 법(ho theios nomos)을 버리는 자들에 대해 보복하는 자로서입니다. 신을 따르게 되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되는 걸 모두가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확실히 신이야말로 만물의 척도(metron)일 것이며, 누군가가 말하듯, 어느 인간이 그런 것보다는 아마도 훨씬 더 그럴 것입니다.”(법률, 715e-716c) 여기서 신이 만물의 척도라고 주장하는 것은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주장한 누군가”, 즉 프로타고라스Prōtagoras에 대한 반박이다.]이다.

모든 법률 규정의 구체적인 항목 앞에는 제정 근거를 밝히는 서문이 있는데 여기에는 도덕적·정치적 뼈대가 담겨있다. “신은 모든 것의 척도이므로, 척도에 따라 알맞은 상태를 항상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신적인 힘들, 그리고 우리의 부모와 선조들을 찬양해야 한다”, “덕있는 삶은 가장 즐거운 것이다등이 그것이다.

 

결론

세 대화편은 최선의 폴리스가 무엇인지에 대한 구상이라는 점에서 같다. 법률은 법률을 신적인 것 또는 신 자체로서 찬양하며, 법률의 지배를 통해 구원”(4715d)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국가-政體에서는 이것이 철학자의 지배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으로 주장(5473c-e)되었었다. 국가-政體는 좋음의 이데아가 갖는 종교적 함축을 소극적으로 드러내는데 반하여 법률은 신이 모든 것의 척도가 된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또한 국가-政體법률모두 폴리스의 도덕적 기초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영혼의 전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법률에서 법률은 진정한 철학적 앎을 가진 입법자가 만드는데, 그는 정치가의 왕다운 인간과 같은 것이다. 세 대화편 모두에서 법률은 이데아에 대한 앎을 현실에 구현한 것들이다. 플라톤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의 핵심은 이데아와 현상 간의 매개가 없다는 것인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파르메니데스를 해석했을 때 알 수 있듯, 사유 기능의 작용으로서 변증법적으로 논리적 사고의 세계와 경험적 행위의 세계를 매개하여 경험계와 의미 세계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설명할 수 있다. AA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A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플라톤에게 있어 이데아(형상)은 원자적이고 독자적인 존재가 아니다. 변화 속에서 타자 존재와 연관을 맺을 수 있는 존재(ousia)인 것이다. 정치철학에 있어서도 같다. 정치철학은 앞서의 논리가 보다 구체적 층위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다. 국가-政體에서의 좋음이라는 이데아가 정치가=철인을 매개로 이상적 법률에 가까운 현실적 법률로서 구현되는 것이다. “좋음의 이데아는 원자적으로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철인을 매개로 법률로 구현되며, 그것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플라톤의 대화편 파르메니데스를 마치 헤겔의 논리학처럼, 플라톤 사유 체계의 전반을 해석하는 근거로서 제시한 나의 해석이다. 내가 참고한 책 중 서양 정치사상사 산책(우노 시게키, 교유서가)의 플라톤 해석을 보면, 플라톤을 초기와 후기로 나누어 정치가법률과 같은 텍스트를 국가-政體에서 그렸던 이상적인 폴리스를 단념하고, 가족이나 사유재산제를 부활시킨 기획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오트프리트 회페의 해석을 일부 전유하여, 국가-政體법률이란 텍스트에서 플라톤 사유의 근본적인 변화는 없는 것으로 본다. 여기에 더하여 파르메니데스에서 나타나는, 논리적 사고를 통해 얻어지는 이데아와 경험 세계의 현상계간 관계를 확인하고, 플라톤의 기획을 단지 이상을 단념한 것으로 두는, 너무나 편리한 해석이 아닌 형상-현상의 관계가 추상-구체 층위에서 다뤄지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었다. 또 생각해 볼 점은 플라톤이 대안 체제로서 내놓는 철인치자의 통치이다. 각자의 성향에 따라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갖고 그에 충실히 살아가는 사회는 과연 좋은 사회라고 볼 수 있을까? 플라톤이 이렇게 사회적 분업을 이야기한 것은 당시 아테나이에는 사회적 분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플라톤은 분업을 신분의 사회적 분할의 기초와 즉자적으로 일치시킨다. 마르크스는 이런 플라톤의 시도에 대해 자본 1-1(강신준, p.502)에서 플라톤의 공화국은 그 속에서 분업이 국가의 형성 원리로 전개되는 한 이집트적 카스트 제도의 아테네적 이상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플라톤이 철인과 정치인의 역할을 강조할수록, 그 체제는 엘리트 귀족정과 같은 성격을 띄게 되므로 이는 꽤나 적확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보충 – 『국가-政體의 비유들

동굴의 비유를 통해서 교육(paideia) 및 교육부족(apaideusia)과 관련된 우리의 성향을 논의한 이후 동굴의 비유를 태양의 비유, 선분의 비유와 종합. 적용 방법은 시각을 통해서 드러나는 곳을 감옥의 거처에다 비유하는 한편으로, 감옥 속의 불빛을 태양의 힘에다 비유하고, 동굴의 비유에 있는 위로 오름’(anabasis)과 높은 곳에 있는 것들의 구경(thea)[선분의 비유에 있는] ‘지성에 의해서[라야] 알 수 있는 영역으로 향한 혼의 등정(anodos)으로 간주하는 것.

시각을 통해서 드러나는 곳은 태양의 비유에서 논의된 가시적 영역’(ho horatos topos)이며, “감옥은 동굴의 비유에서 거론된 동굴 안이다. 이 둘이 대응하므로 감옥 속의 불빛태양의 힘도 대응된다. “위로 오름’”은 동굴의 비유에서 동굴 밖으로 나가는 것이며, “‘지성에 의해서[라야] 알 수 있는 영역으로 향한 혼의 등정은 선분의 비유에서 혼이 가정들에서 벗어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511a)에 대응한다. 선분의 비유에서 아랫 부분(태양의 비유에서는 눈에 보이는 부류의 부분)동굴 안, 윗 부분(태양의 비유에서는 지성에 알려지는 부류의 부분)동굴 밖에 상응한다. “인식할 수 있는 영역에 있어서 최종적으로 그리고 각고 끝에(“고통스러워 하며” 515e) 보게 되는 좋음()의 이데아’”모든 것에 있어서 모든 옳고 아름다운(훌륭한) 것의 원천(aitia)”인데, 이는 “‘가시적 영역에 있어서는 빛과 이 빛의 주인인 태양과 비유되며, 선분의 비유에서의 “‘지성에 의해서[라야] 알 수 있는 영역에서도 스스로 주인으로서 진리와 지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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