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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겔스가 말하는 변증법의 법칙

 

엥겔스
Friedrich Engels

읽기 전 보면 좋을 변증법에 관한 글

 

엥겔스가 세 명제를 설명한 부분은 자연의 변증법변증법파트에 기술되어 있다.

 

따라서 변증법의 법칙들이 추상화되는 것은 자연과 인간사회의 역사로부터이다. 그것들은 사유 자체 뿐만 아니라 역사적 발전의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의 가장 일반적인 법칙에 불과하다. 그리고 사실 그것들은 대개 세 가지로 집약된다:

    양의 질로의 전화 및 그 역의 법칙

    대립물들의 상호침투의 법칙

    부정의 부정의 법칙

세가지 법칙 모두가 단순한 사유의 법칙(Denkgesetze)으로서 관념론적 방식으로 헤겔에 의해 발전되었다: 첫 번째 법칙은 그의 논리학[Logic] 1부인 존재론에서 발전되었고, 두 번째 법칙은 그의 논리학2부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인 본질론의 전체를 채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법칙은 전체계의 구성을 위한 기본적인 법칙으로서 나타난다.”(프리드리히 엥겔스, 자연의 변증법, 전진, 1989, p.61)

 

엥겔스는 해당 법칙들을 설명하며 자연에도 변증법이,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과학을 끌어오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양질전화와 그 역의 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자연에서 질적인 변화는 오직 물질 또는 운동(이른바 에너지)의 양적인 추가 또는 이탈에 의해서만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표현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0°C에서 물이 고체로 변하며 100°C에서 물이 기체로 변하는 예를 통해 양적인 변화가 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서술을 한다.

 

그러나 이런 서술보다 양질전화와 그 역의 법칙을 더 본질적으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헤겔의 대논리학에서 그 근거가 되는 내용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는 대논리학1권의 제3: 도량(度量,Das Maß) 파트에서 서술된다. 도량(度量)은 양으로서의 정량(定量) 개념에 비()의 개념이 더해진 것이다. 양적인 숫자간의 비례관계는 1:2, 2:4, 3:6처럼 다양한 정량들의 변화 속에도 스스로는 변화하지 않는 본성을 갖는다. 다시 말해, ()라는 질적 규정이 그것을 구성하는 양적 규정, 즉 정량(定量)들에 의해 규정되어 도량(度量)을 구성한다고 헤겔은 말한다.

 

질적인 것은, 정량이 그의 타재성(Anderssein) 속에서, 다시 말하면 그의 비율화 속에서 자기 동등성을 획득하고 이 자기 동등성이 정량에 대해 무관심적인 즉자 존재를 형성하는 한에서 추상적인 질로 퇴화해 버린다. 이 즉자 존재는 정량의 자기 지양적이며 매개적인 직접성과는 반대되는, 존재로서의 직접성의 성질을 띤다. 따라서 이 즉자 존재는 존재이긴 하면서도 역시 이런 매개와는 반대되는 부정적인 존재, 따라서 하나의 규정된 존재이다. 따라서 이러한 존재는 다만 질로서의 규정적 존재이다. 이러한 질은 규정성조차도 하나의 무관심적인 규정성으로 지니고 있는 순수량이다. 이러한 질은 첫째로 그것이 직접적 규정성인 한 모름지기 어떤 하나의(eine) 질이 되지만, 그러나 둘째로 이 하나의 질은 정량에의 관계 속에서(in Beziehung auf das Quantum) 규정된 것으로 정립됨으로써 결국 순수량(reine Quantität)이 되는바, 이는 그 하나의 질에 대하여 무관심적이며 외면적으로 규정 가능한 성질을 띤다.”(임석진, 헤겔, 대논리학 1, p.393-395)

 

어느덧 순수량이 질이 되는 가운데 정량도 오직 정량의 자기 자체 내로의 복귀를 통하여 질 속에서 지양되어 감으로써 이제 질은 그 자신의 최초의 직접성과 정량의 부정적인 통일을 이루게 된다. 질은 외면적 규정태의 지양이며 더 나아가 그 자신의 외면적 규정태에 대응하는 부정을 뜻한다. 그리하여 여기에는 이상과 같은 정량의 한계에 대한 자기내적 존재와 또한 바로 이와 같은 그의 현존재성에 반대되는 규정적인 대자 존재가 현존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대자 존재적인 것은 그 모두가 질, 즉 어떤 규정성을 지니는데 이는 정량의 성질이다. 질 자체는 본래 정량의 직접성을 지양하고 바로 그 정량을 비율화 한다는 규정성을 지닌다. 따라서 이 경우에 질이 그 밖의 어떤 규정성으로서 지니는 더 이상의 의미는 비본질적일 뿐이며 그와 같은 의미는 다만 추상적 계기에 속할 뿐이다.”(임석진, 헤겔, 대논리학 1, p.395)

 

질과 양은 서로 배제되는 개념으로 처음에 나타난다. 질적 규정을 배제한 것이 양적 규정이고 양적 규정을 배제한 것이 질적 규정이다. 여기서 대립물은 상호침투하고 있다. 헤겔의 설명으로 이 매개를 가능케 하는 것이 비()라는 개념이다. 질은 비율화 되어 수량적으로 비교되고 조정된다. 이러한 정량 존재를 고려하질 않는다면, 무관심적인 즉자 존재로 존재한다면 질은 구체적 내용을 지니지 못하고 추상화될 것이다. 결국 추상성에 구체적 내용을 지니게 만드는 것은 정량과의 관계를 통해 비율화하는 것에 그 근거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헤겔에게는 도량(度量)이라는 개념으로 제시된다. 이는 질과 양의 통일로서 일종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다. 예컨대 물이 끓는 것과 같이 일정한 양적 한계를 넘었을 때 그 질적 규정이 변화하고 또 질적 한계를 통해 그 의미를 얻는 것, 이것이 헤겔이 말하고 엥겔스가 정식화한 양질전화와 그 역의 법칙의 의미이다.

 

다음으로 대립물 상호침투의 법칙에 대하여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변증법은 자연에서의 우리 경험의 결과로부터 모든 양극적 대립물 일반이 두 대립적 극들의 서로에 대한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되며, 이러한 극들의 분리 대립은 그것들의 통일성과 상호연관 안에서만 존재하며, 역으로 그것들의 상호연관은 그것들의 분리 안에서 존재하고, 그것들의 통일성은 그것들의 대립 안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프리드리히 엥겔스, 자연의 변증법, 전진, 1989, p.70-71)

 

예컨대, 자석의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자석은 S극과 N극이라는 서로 대립된 극들의 통일로서 존재하며, 양자는 불가분한 관계에 놓여 상호 배척하면서 동시에 서로 연관되어 있다.

 

그 하나의 반성규정은 적극적인 것이며 다른 하나는 소극적인 것이긴 하지만, 이때 전자는 오직 자기자체에 있어서 적극적인 것이며 또한 후자도 역시 자기자체에 있어서 소극적인 것일 뿐이다. 결국 이들은 저마다 자기 것이 아닌 다른 계기와의 관계를 바로 그 자체내에 지님으로써 서로가 무관심한 상태에서 저마다의 자립성을 고수하는 것이 된다. 이런 뜻에서 그들은 서로가 자체적으로 결집(結集)된 완전한 대립(der ganze in sich geschlossene Gegensatz)을 형성한다.이러한 전체로서 볼 때 그들은 각기 바로 자기의 타자에 의해서 자기와 매개됨으로써 모름지기 이 타자를 스스로 내포하는 것이 된다(~vermittelt durch sein Anderes mit sich, und enhält dasselbe).”(임석진, 헤겔, 대논리학 2, p.88)

 

이러한 자립적 반성규정은 마치 이들 서로가 자기와 다른 또 하나의 규정을 내포함으로써 비로소 자립적일 수 있다는 그러한 입장에서 오직 이 타자를 배제해야만 하는 까닭에(~in derselben Rücksicht, als sie die andere enthält, und dadurch selbständig ist, die andere ausschließt) 결국 그 하나의 규정은 스스로의 자립성을 지닌 상태에서 오히려 자기자신의 자립성을 배제하는 것이 되고 만다. 왜냐하면 이 자립성이란 것은 직접적으로 자기자신으로 있으면서 바로 자기의 부정적인 규정을 자기로부터 배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립적 반성규정은 스스로 모순을 유발하기에 이른다.”(임석진, 헤겔, 대논리학 2, p.88)

 

상술한 바와 같은 자기 자신을 배제하는 반성을 통해서 마침내 적극적인 것과 소극적인 것은 각기 저마다의 자립성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지양함으로써 이제 그들은 각기 단적인 이행을 의미하거나, 아니면 오히려 그 자신을 자기의 반대물로 전환시키는 것이 된다. 이렇듯 상호 대립적인 것이 그들 자체 내에서 간단없이 소멸되는 것이야말로 모순을 통해서 조성되는 일차적인 통일이라 하였으니, 이러한 통일은 곧 영(, die Null)을 의미한다.”(임석진, 헤겔, 대논리학 2, p.91)

 

이상의 인용들과 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는 대논리학2권의 1편을 보면 대립물 상호침투의 법칙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론 부정의 부정의 법칙이다. 엥겔스는 저서인 반뒤링론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어디에서나, 언제나 진행되는 아주 단순한 과정인데, 이것은 낡은 관념론 철학이 그 아래에서 그 과정을 은폐하고 또 이러한 은폐가 뒤링씨와 같은 타입의 곤궁한 형이상학자에게 이익이 되는 신비의 뚜껑을 벗기기만 하면 어린아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보리알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수 억만개의 보리알을 벗겨 삶아 먹는다. 그러나 이러한 보리알 중의 하나가 적당한 조건을 만나, 다시 말해서 적합한 지면에 떨어져 온도와 습기의 영향을 받아 그 자체에 독특한 변화가 일어난다. 다시 말해서 싹이 나온다. 보리알 그 자체가 없어진다. 부정된다. 그리고 그 대신에 거기서 보리알의 부정인 하나의 식물이 발생한다. 그러면 이 식물의 정상적인 생애는 어떠한 경로를 밟는가? 이 식물은 성장하고, 개화하고, 결실을 맺어서 결국 다시 보리알을 생산한다. 그리고 이 보리알이 성숙하면 그 줄기는 말라 죽는다. 즉 이 식물 자체가 부정된다. 이러한 부정의 부정의 결과로 다시 맨 처음의 보리알이 나오는데, 이번에는 한 알이 아니라 열 배, 스무 배, 서른 배의 보리알이 나온다.”(엥겔스, 반뒤링론)

 

이것은 변증법이 그리는 원환(圓環)의 전제가 되는 원리이다. 이 부정의 부정의 법칙이 관철되며 다시금 처음의 위치로 돌아오는 자기 내 복귀혹은 자기 내 귀환이 가능하게 된다. 엥겔스는 다양한 영역에서 이 원칙이 관철됨을 증명하려는 노력을 하는데, 예컨대 수학에서 a a를 곱하면 부정의 부정이 이루어져 a^2이 된다는 다소 억지스러운 말도 한다. 재밌는 내용이다.

 

첫 번째 전제(인용자 주즉자적인 보편성)가 보편성과 전달의 계기라고 한다면 두 번째 전제(인용자 주대자적 규정, 첫 번째의 부정자)는 개별성에 의해서 규정된다고 하겠다. 여기서 이 두 번째 전제는 무엇보다도 배타적일뿐더러, 또한 자립적이면서 서로 상이한 입장에서 타자에 관계하는 개별성인 셈이다. 따라서 이제는 부정적인 것이 곧 매개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바, 왜냐하면 부정적인 것은 곧 자기자신과 함께 다름아닌 그 자신이 부정하는 것에 해당되는 직접적인 것을 자체내에 포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방법상의 이러한 전환점을 맞이하면서 마침내 인식의 경로는 자기자체 내로 복귀한다. , 여기서 부정성은 자기부정적인 모순으로써 동시에 최초의, 일차적인 직접성의 회복이며 또한 단순한 보편성의 회복이기도 한바, 왜냐하면 타자의 타자(das Andere des Andern), 그리고 부정적인 것의 부정자는 곧바로 그것이 긍정적인 것, 동일적인 것, 또는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첫 번째의 직접적인 것과 매개된 것에 대한 세 번째의 것, 제삼의 것(das Dritte, zum ersten Unmittelbaren und zum Vermittelten)이 되겠다. (임석진, 헤겔, 대논리학 3, p.439-430)

 

이 부분만 인용하긴 했지만, 대논리학3권의 절대적 이념 파트에선 길게 부정의 부정의 법칙이 어떻게 관철되는가에 대해 논증한다. 앞서 말한 세 가지 명제, 즉 양질전화와 그 역의 법칙, 대립물의 상호침투의 법칙, 부정의 부정의 법칙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다. 변증법적 서술을 한다는 것은 저 세 가지 과정들이 함께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용한 부분 외에도 대논리학전체에서 그 운동을 읽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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