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광의 하사웨이 - 키르케의 마녀』에 대한 또다른 해석 - 시간과 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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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광의 하사웨이 시리즈의 주된 테마 중 하나는 시간이다. 케네스랑 백작이 기기에게 인생에 대해 논하는 장면도 그렇고, 시계가 자주 노출되는 연출 역시 그렇다. 백작은 과거 기기에게 365일 중 즐거운 날이 하루가 있다면 나머지는 지루해도 된다며 그것이 인생이라고 말했고, 케네스는 홍콩으로 떠나려는 기기에게 인생은 원래 재미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후 바운덴우덴 백작의 별장에서 백작과의 생활을 준비하던 기기는 하사웨이 노아의 이름을 반복해서 불러보곤 한다. 이때 예의 그 시계가 다시 한 번 스크린에 비친다.

기기가 보기에 백작은 가여운 사람이다. 백작은 막대한 부귀를 이룬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삶에 큰 미련이 남은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주변인들은 백작이 어서 죽어주기만을 바라고 있다. 반면 케네스는 평민 출신인 배경과 성공에 대한 집착이 강한 인물이다. 기본적으로 유능하지만,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것을 쟁취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기기가 보기에 백작과 케네스는 종속된 인물이다. 축적된 부는 노년이 된 백작에게 역설적으로 족쇄가 되었고, 케네스의 성공을 향한 집착은 그의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재미가 없다.

기기는 백작을 떠날 결심을 하게된다. 기기의 삶 역시도 백작에게 종속된 삶이었기 때문이다. 홍콩의 별장에서 떠날 준비를 마친 기기는 거울을 보며 “더 살고 싶어졌어요”라고 독백한다. 추측컨대, 백작의 인형으로서의 삶이 아닌 인간 ‘기기 안달루시아’의 삶을 살고 싶어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백작의 종속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향해 한 발자국 나아가는 것이다. 그다음 이어지는 독백은 “어쩌면 그것이 나의 운명, 나는 죽으러 가는걸지도 몰라요”이다. 이것은 백작이라는 상징계적 세계 바깥으로 나아가는 기기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한 대사이다. 상징계 바깥에는 죽음충동의 세계(실재계)가 있다. 그러나 진리를 마주하기 위해서는 예수가 광야로 나가듯, 부처가 출가하듯 그 바깥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

그곳은 공포로 가득찬 곳이지만, 아버지와 대타자의 질서에 포획되지 않는 진정한 주체가 되기 위해선 거기로 나아가 진리와 대면하는 수밖엔 없다. 그리고 이것은 기기의 운명이다. 내가 보기에 기기는 ‘-1’로 표현될 수 있는 존재이다. 남성적 욕망으로 구축된 상징계적 질서의 어느 곳이든 기기가 들어간다면, 그 질서는 삐그덕대고 붕괴되며 끝내 상징계적 언어를 상실하고 만다. 그래서 키르케의 마녀이다. 진리는 기기의 얼굴을 하고 있다.

따라서 하사웨이가 갖고 있(다고 믿)는 팔루스, 즉 마프티의 정체성을 깨부술 수 있는 것도 기기일 것이다. 작중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시계, 기기가 하사웨이를 떠올릴때면 등장하는 그 시계는 하사웨이가 다바오에서 기념품으로 구입한 시계이다. 이 시계는 마프티 공습때 호텔이 폭격당해 망가진 채 발견되는데, 이것을 기기가 가져와 고쳐서 사용한다. 나는 그 시계를 마프티란 정체성으로부터 정지당한, 인간 ‘하사웨이 노아’의 정체성을 뜻하는 메타포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기기가 시계를 고친 것을 다시금 ‘하사웨이 노아’로서의 시간을 흐르게 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다시말해, 마프티에 종속된 삶이 아닌, 인간 하사웨이 노아로서의 삶을 살게한다는 것이다.

백작을 떠난 기기는 케네스의 부대를 거쳐 에들레이드 기지로 향한다. 이곳에서 케네스가 말하길 몇만 에이커의 땅을 구입해대는 연방의 유력자들이 있다고 한다. 기기가 그 연유를 묻자 케네스는 영생을 사려는 시도라고 답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돈으로 영생을 살 수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기기는 백작을 떠올리며 인간이 죽었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젊었을 때만이 할 수 있는 것을 떠올리고 하사웨이를 만나러갈 결심을 하게 된다. 여기서 젊었을 때만이 할 수 있는 것, 동시에 인간이 죽었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경험’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 돈도 명예도 그 빛을 잃는 순간에 인간에게 남는 것은 그의 ‘서사’일 것이 분명하다.

포이어바흐에 따르면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의 가장 큰 능력은, 인간은 ‘자기의 본질’에 대해 사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대화한다. 인간은 자기자신과 대화한다. 인간은 자기자신에게 나이자 당신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스스로에게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서사를 부여하기 위해선 전제가 필요하다. 바로 자신의 의지와 이성에 따라 세상을 파악하고 개척해나갈 수 있는 능력이 그것이다. 앞선 맥락과 함께 이야기해보자면, 종속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어야한다. 또 마르크스가 말하길 “시간은 인간의 발전의 공간(空間)이다”라고 하였다. “자유로운 시간을 조금도 가지지 못”하고, “수면과 식사 등등의 순전히 육체적인 요구에 의해 생겨나는 중단” 이외에는 생활 전체를 빼앗겨 버린 인간은 “가축보다도 못하다”고 말한다. 포이어바흐와 마르크스의 논의에 따라 기기의 선택을 이해해보자면, 종속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자신의 시간을 자신의 의지대로 사용하며 자신의 서사를 부여하려는 시도로 읽어낼 수 있다.

나는 삶을 제멋대로 살아야한다는 해석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오해는 곤란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모두 느낄테지만, 종속되지 않는 인간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기가 그러했듯, 진리를 마주하기 위해 그 밖으로 한 번씩 나가볼 필요는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을 스스로를 위해 쓸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기기가 통찰했듯, 인간이 죽었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그 무엇, 나의 해석으로는 ‘경험’이 될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

 

Augustinus Hipponensis

 

예수의 죽음과 그의 말들

예수는 로마의 유대 행정장관(praefetus Iudae)인 빌라도의 명령에 따라 십자가 처형(동방 지역에서 로마로 유입되어 시행된 로마의 형벌)을 받았다. 처벌의 이유(causa poenae)유대인의 왕”(마르코, 15.26), 즉 메시아를 참칭했다는 것. 명백히 정치적인 차원에 놓인 것이지만 초기 기독교도들은 이것과 거리를 두었다. 정치와 분리된 운동을 시도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예수의 선포: “(kairos)가 찼고(peplērōtai) 하느님의 나라(basileia tou theou)가 가까왔으니(ēngiken) 회개(metanoeite)하고 복음(euangeliō)을 믿으라(pisteuete).”(마르코, 1.15)

때가 찼고”: 임박해있으면서도 현존하는 것, 아직 도래하지 않았지만 이미 현재 속으로 진입해 들어와 있는 것. 미래적 종말론과 현재적 종말론의 결합. ‘아직-아니이미-지금의 중첩. 예수의 등장 자체가 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의 징표

basileia는 신정정치(Theokratie)가 아니라 전적으로 종교적인 지배, 하느님의 강력한 주권적 지배.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 만일 내 왕국이 이 세상 것이라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다인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내 왕국은 결코 이 세상 것이 아니다.”(요한 18:36) 복음서에는 ekklēsia가 두 번 밖에 나오지 않는다.(마태오, 16.18; 18.17)

basileia에 들어가는 조건: 회개(metanoia)와 믿음(pistis)

 

바울의 말들과 그가 구상한 에클레시아’ekklēsia의 성격

세상과 거래를 하는 사람은 세상과 거래를 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은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고린, 7.31) 자신들의 운동이 기존의 정치체제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천명하고 동시에 전혀 다른 공동체 구성원리에 따른, 세상에 섞여 살되 세상과 다른 차원에서 사는 집단을 만들겠다는 것.

그러나 우리는 하늘의 시민(politeuma)입니다.”(필립비 3:20)

바울 당시의 세계 질서 모형은 종족공동체(와 그것이 전개된 폴리스 체제)와 로마 제국 질서.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기독교가 제시한 사회적 연합을 정당화하려는 시도이다. 이 공동체는 이 세계를 다스리는 메시아를 요청함으로써 로마 제국의 힘을 약화시킴과 동시에 율법과 혈연에 기반한 이스라엘(민족)의 자기규정에 내재한 한계를 상대화시킴으로써 예루살렘 공동체에도 맞선다.

로마 제국의 현실적 위력에 직면한 바울은 정치적 질서와 기독교 공동체 질서의 불가피한 공존을 모색한다. 정치적 권위에 대해 져야 할 의무와 신에 의해 명해진 의무를 구분하는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정치적 질서가 신이 창조한 여타 질서와 고립된 채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 곧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왕권과 주권과 권세와 세력의 여러 천신들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모두 그분을 통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만물은 그분을 통해서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골로사이 1:16) 그의 시도는 정치적 질서를 신적인 체계 안으로 끌어들여 기독교인들이 정치적 질서와 대결할 수밖에 없도록 한 데 있었다. 따라서 현실 세계에서는 제국에 대한 제한적인 충성과 극단적인 이탈이라는 양가적 감정이 공존하였다. 이것은 정치적 긴장을 유발시켰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과 두 나라 이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 정치철학에서는, 전자의 경우에는 강력하게 후자의 경우에는 미약하다 할지라도, 초월적인 것이 정치적 공동체의 궁극적인 목적으로서 폴리스의 정당성에 대한 최종 근거로서 작용하였다. 로마 공화정과 제국에서는 권력기구로서의 현세의 공동체가 전면에 등장하였다해도 스토아적인 일종의 자연법적 이상이 궁극적 정당화 원리로 기능하였다.

기독교가 제도화된 질서로 전환되면서 기존의 정치질서가 가지고 있던 초월적 근거들을 자신의 것으로 전유하였고, 기성체제를 철저하게 권력기구로만 간주하고 일종의 정치체제로서의 교회는 다른 정치적 공동체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순수파의 비난이 불가피했고, ‘이단으로 단죄된 자들은 자신들의 순수함의 근거를 최후의 것에 두는, 임박한 종말론을 내세웠다. 이에대해 최후의 것을 제도화하고 그것을 교회 자체의 정치 및 현실국가와 유화宥和(Versöhnung)시키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유화에 관련된 민감한 쟁점들: 국가와 기독교의 상호 지지가 이루어지면서도 독특한 종교의 성격을 버리지 않을 수 있는가; 기독교가 로마의 시민종교와 같은 길을 피할 수 있는가; 교회가 정치적 실체가 된 역사적 상황에서 국가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국가가 신앙을 고취시키고 신도를 단속할 때 교회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교회와 국가는 역사라는 시간 차원에서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 이러한 쟁점들에 대한 종합적 해결을 시도한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이다.

로마관: 로마 제국이 영속하리라는 주장, 영원한 로마’(Roma aeterna)를 공허한 것으로 일축하였다. 알라리쿠스의 로마 유린을 바라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각은 그 모든 안이한 생각들[몇 세기 동안 제국을 유지하고 하느님의 도구로서 세계를 정복함에 따라 전 인류에게 기독교를 전파할 운명을 지닌 것으로 여겨진 것]에 거대한 검은 십자가를 드리우는 행위였다. 그에 따르면 로마 제국은 세계 역사에 등장한 무수한 나라들 가운데 하나였고, 특별히 고결하지도 않았으며, 또 영원히 지속될 운명도 아니었다.

410년 알라리쿠스가 로마를 점령하여 약탈한 사건은 기원전 390, 브렌누스Brennus가 이끄는 켈트 군대가 로마 성문을 통과해 카피톨리움 언덕으로 피난한 로마 시민들을 포위한 이래 800년만에 일어난, 외세에 의한 로마 함락이었다. 수백 년간 로마는 세계의 중심이자 결코 멸망하지 않을 영원의 도시였다. 그러므로 적군에 의해 점령 당했다는 사실은 일시적인 약탈이 안겨준 상대적으로 경미한 피해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상징성이 있었다. 이교에 동조하는 몇몇 사람은 로마가 옛 신들을 저버렸기 때문에 쇠퇴한 것이라고 믿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신국론을 집필한 이유는 바로 그러한 주장 때문이었다.

미래는 희망의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새로운 시간의 차원이 비정치적(창조, 성육신成肉身, 구원과 같은 의미있는 사건들의 계기(kairos)가 정치적 사안과 관련되지 않는다정치적(일련의 역사적 사건의 끝에서 정치가 끝나게 된다)임을 뜻한다. 이는 두 가지 점에서 고전적 모형이 폐기되는 것을 의미한다. 고전적 모형에서는 역사가 경과하면서 정체는 쇠퇴한다. 이를테면 플라톤의 정치가는 신들이 다스리던 시대(크로노스의 치세와 제우스의 치세)의 쇠퇴에 이은 인간 정치가의 등장이라는 일종의 역사철학을 제시하며, 아리스토텔레스와 폴뤼비오스의 혼합정체론은 쇠퇴의 극복을 위한 시도들이다. 또한 그들은 인간의 삶이 고양되고 완성되는 공간은 폴리스와 정치공동체라고 주장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명료하게 부각시켜 기독교가 국가 속으로 매몰되지 않게 하려 했다. 시간 속에서 기독교가 궁극적으로 승리하리라는 것을 명료하게 하려 했다. 실존적인 차원에서 기독교인이 정치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자각하고 인간의 정신에 대한 강제를 옹호하는 설득력있는 논변을 제시하려 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방대한 분량으로 인류 역사 전체를 두 도성, 곧 지상의 도성civitas terrena과 하느님의 도성civitas Dei으로 나누어 성찰한다. 그는 이 두 도성이 궁극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각각은 서로 다른 정체를 구성하며, 각 도성이 지향하는 가치와 덕은 철저히 대립한다. 모든 인간은 두 도성 중 하나의 시민이다. 그러나 역사 안에서 두 시민은 불가분하게 서로 관련된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이교도들이 주장하는 덕은 사실 훌륭한 악이다. 이교 문화는 전사의 덕을 숭상했고 폭력을 영예로운 것으로 치장했으며 칭송과 명예를 갈망하는 인간 욕망을 미화했다. 반면 하느님의 도성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고유하고 자연스로운 속성이 평화라고 믿는다. 하느님의 도성이 실천하는 덕은 사랑이다. 로마의 몰락은 결코 세상의 멸망이 아니다. 지상의 도성은 일시적이며, 오직 하늘 예루살렘, 평화의 도성만이 영원하다.

두 도성은 교차하기는 하지만,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흡수하지는 않는다. 각각은 상대방에 이득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어느 한 쪽도 다른 쪽의 구원을 이루어 줄 수는 없다. 각각은 자신이 설정한 조건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

대립물의 이론: 정치적 질서는 효용을 가지고 있으나 찬양될 수 없다. 일시적으로 구제받을 뿐이다.

질서(ordo)의 이론(신국론, 19.13): “질서란 동등한 것들과 동등하지 않은 것들의 고유한 자리를 각각에게 부여하는 배치다.”(ordo est parium dispariumque rerum sua cuique loca tribuens dispositio.) 정치적 질서와 신적 질서는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수사학 교사에서 기독교 교부로

북아프리카 출신의 위대한 교부,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354-430)는 지칠 줄 모르는 독창성과 철학적 정교함, 문학적 천재성과 잘 연마된 지적 능력으로 동시대인들뿐 아니라 전후 신학자들을 능가하는 독보적인 자리에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서방 그리스도교 세계에 거대한 흔적을 남겼다. 사실상 서방 신학의 개념 체계 전체, 즉 주요 용어와 구분, 주제들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유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컨대 서방 그리스도교는 사실상 아우구스티누스 그리스도교Augustinian Christianity라고 할 수 있다.(그리스도교, 역사와 만나다, 비아)

기독교와 비기독교(이교도, Heidentum)가 긴장관계를 이루며 논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던 시대”.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와 키프리아누스Cyprianus처럼 라틴 문화권에서 벗어나 있었으나 라티움 어를 익혔다. 헬라스 어는 익히지 못하였다.

공직자로 나아가는 출셋길이었던 수사학 공부”,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Hortensius를 읽고 매료되어 철학적 지혜에 관심, 10년간을 마니교도로 지냄, 밀라노에서 암브로시우스Ambrosius의 설교를 듣고 기독교 신앙 회복, 이 시기 플로티노스Plotinos와 포르피리오스Porphyrios의 신플라톤주의 철학에 정통, 32(3868)에 극적인 체험.

고백록(Confessiones), 신국론(De civitate Dei), 삼위일체론(De Trinitate) 자유의지론, 행복론, 질서론등의 저작.

신플라톤주의와 아우구스티누스: 신플라톤주의를 혁신(“세례를 내렸고”)하여 신플라톤주의 고유의 특징, 이교도적가치를폐기하여 기독교 사상에 도움이 되는 것만 남겼으며 이는 후대의 기독교 문화에 전승되었다.

illuminatio(조명, 신의 비춤) 이론: 인간의 정신은 신의 빛을 받지 못하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 고대의 행복주의에 대립하여 인간의 지속적 행복에 대한 보증은 인간 자신과 그가 살아가는 폴리스가 아닌 신으로부터 온다는 견해. 완전한 행복과 최고선은 종교적인, 즉 신 안에서의 영원한 평화로 규정된다. 이는 외면상 헬레니즘 시기에 만연한 행복의 사사화私事化로 보이나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구원만을 중시하므로 행복이 가진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적인 정치적 차원, 더 나아가 세계 자체의 고유한 가치가 폐기되었다.

두 나라론’, 즉 세상의 나라와 신의 나라에 대한 이론과 신의 구원의 역사로서의 세계사에 관한 이론은 현세를 급진적이고 극단적인 방식으로 상대화시켰다.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에서는 현실적인 정치사상이 불가능하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고백록의 두 가지 의미: 신앙의 고백이면서 참회의 고해성사

첫째 부분(1-10)은 방황, 회심을 거쳐 기독교도가 되기까지의 과정. 둘째 부분(11-13)은 창세기 해석과 시간의 문제, 영원의 문제

정치사상 관련: 진정한 행복, 영혼의 구원은 교회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함축,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 이단자에게는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훗날에는 국가의 힘을 동원해서라도 개종시켜야 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펠라기우스Pelagius파 단죄).

인식론적, 철학적 아우구스티누스주의’: 순수한 이성은 능력이 제약당함으로써 자율성을 상실한다. 참된 앎의 근거는 신이 가지고 있는 관념으로서의 이데아이며, 신이 은총으로 베풀어주는 조명을 통해서 인간은 그것에 닿을 수 있다.

인간학적 아우구스티누스주의’: 인간의 정신은 신과 닮았으나 자립성의 수준에는 한계가 있다.

신학적·윤리적 아우구스티누스주의’: 인간은 신을 의지할 자유가 있으나 타고난 의지의 박약함, 즉 원죄로 인해 선을 성취할 자유는 없다. 따라서 신이 베풀어주는 선물, 즉 은총을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 인간의 자율적 의지를 주장한 펠라기우스에 반대하고, 인간을 전적으로 악한 존재로 여기는 마니교에도 반대. 소크라테스적인 앎과 덕의 일치에 반대. 오로지 신의 은혜(gratia Dei).

 

신의 나라 대세상의 나라

신국론의 시대적 배경: 로마의 몰락, 이교도적(북아프리카 교회를 분열시킨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기에 성서를 넘겨주었던 기독교도들을 다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도나투스파를 포함한)인 사상공격에 맞서 기독교 교리를 변호(호교론護敎論). 알라리크Alaric의 로마 약탈(410)의 책임에 대한 공방. 이는 저술방식에도 반영되어 기독교를 매력있게 설명하면서도 타 종교에 대한 관용을 거두는 도발적인 방식을 취함.

신국론의 구성: 두 가지 목표, 즉 호교론적 목표와 논증적 목표가 구성에 반영되어 있다.

refutatio(1-10): 이교도적 공격에 대한 반박. 1-5권은 로마는 불명예스럽게 타락한 국가였으므로 로마의 국교와 종교의식이 현세에서의 행복을 보증한다는 견해 반박, 6-10권은 로마의 신들은 현세의 삶에 도움을 주지도 못하였고 영원한 삶도 베풀어주지 못하였으므로 이교도적인 종교의식이 내세의 행복에 도달할 수 있었는가를 논박. 첫째 부분의 정치사상적 함의는, 정치사상은 종교를 모든 정치적 연관에서 분리해야 한다는 것, 즉 정교분리 원칙을 천명한 것.

demonstratio, defensio(11-22): 이교도의 비판을 물리친 자리에 들어선 기독교의 진리는 두 나라의 기원, 전개 그리고 응분의 종말”(11권 제1; 11.1)을 보여주는 기독교적 구원의 역사에서 드러난다.

인간학적·정치적 이원론: 인간은 본성상 사회적이면서도 죄 때문에 서로 불화한다. 이 본성 안에 지상의 나라와 천상의 나라의 기원이 있다. 이는 종말론적인 것, 최후의 것과 관련하여 이해되어야 하는데, ‘모든 시간의 끝에 가면 이 이원론을 무너지게 된다. 인간의 본성과 마찬가지로 자기애(amor sui)에 지배받는 지상의 나라(civitas terrena, 악마의 나라(civitas diaboli, 16.16)라고도 불림)와 영적이고 신에 대한 사랑(amor dei)에 의해 만들어진 신적인 나라(civitas divina, 14.28)가 있다. 신국론의 관심은 철저하게 신의 나라에 맞춰져 있다. 따라서 서구의 자유의 역사에서 본질인 논제인 국가와 종교의 분리가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신의 나라의 본질과 두 나라의 관계: 두 나라는 이 세상에서는 경계가 애매하며, 최후심판으로 양편이 갈라지기까지 서로 뒤섞여있다.”(1.35) 두 나라의 구별은 시간적인 선후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며, 신의 나라에서만 영원한 구원과 안식이 지배한다.

이 세상에는 두 개의 나라들이 함께 섞여있다. 최후의 순간에는 그 혼합이 분리된다. 누가 분리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지상은 교회가 이끌어가는 사회도 아니다. 즉 교회는 지상에 있는 신의 나라가 아니다. 신의 나라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선택받은 자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현세의 교회는 지역조직일 수도 있고, 신도 전체를 포괄하는 보편적인 교회(가톨릭 교회)일 수도 있으며, 초월적 교회, 즉 신의 나라일 수도 있다.

현세의 정치공동체는 더러 교회의 고유한 목적을 위해서 사용(정치공동체가 평화와 질서를 증진하는 한 자격조건을 갖춘 것이다)될 수 있지만, 그렇다해도 이는 정신의 공동체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은 황제에 대한 사랑에서가 아니라 사악한 통치자도 신으로부터 권위를 갖기 때문이다. 그 통치자는 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궁극적으로는 신에 대한 사랑에서 세금을 낸다. 그런데 황제가 신만이 가진 것을 자신의 것이라 주장한다면 기독교도는 황제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황제를 거부한다.

천상의 나라는 하느님을 향유하고 하느님 안에서 서로 향유하는 더할 나위 없이 질서있고 완전히 화합된 사회적 결속”(ordinatissima scilicet et concordissima societas fruendi Deo et inuicem in Deo, 19.17)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사회적인 것(조화로운 교제 관계, 신성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정치적인 것(갈등과 지배의 관계, 강제적 비자발적인 것)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였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해 정치적인 것(현실의 권력국가)이 폐기되고 강제력이 없는 사회(“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든 이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되는 연합체”, 인간적 사회를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전근대의 국가와 근대 국가는 즉자적으로 같다고 볼 수 없다.)

최후의 것’: 아우구스티누스는 법, 정의로운 국가, 정의로운 통치자 등과 관련된 규범 이론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가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에 기독교 세례를 베풀기는 하였으나, 그는 구약의 시편(11:1)과 그에 상응하는 예루살렘에 관한 요한의 계시록에만 관심을 가졌다. 따라서 그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주장하였다해서 근대적 정교분리의 원칙을 준비한 것은 아니다. 더욱이 그는 제네바의 신학자 칼뱅의 세상에 대한 교회의 지배와도 아주 거리가 멀다.

신국론정치신학으로서의 정치사상이 아니라 정치철학 대신에 정치신학을 제시한 것이다. 즉 하나의 종교이론일 뿐이다. 그런 까닭에 지상의 국가는 죄 많은바빌론으로서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이렇게 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구약에서 몇몇 대비되는 사상만을 취하였는데 이렇게 엄혹한 대조를 통해 축소된 성서 해석의 폐해를 유산으로 남겼다고 할 수 있다.

 

구원의 역사로서의 세계사

헬라스와 로마에서 역사는 세속화된 순환이나 황금시대로부터의 퇴행으로 파악되었으나 기독교는 역사를 선형적 발전, 즉 끊임없이 전진하는 진보의 관점에서 파악하였다. 특히 여기서는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의 영적인 진보가 중요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세계사를 구원의 역사로 파악하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사건과 최후의 심판 사이의 중간기에 대해서는 체계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바울의 세 시기: ‘율법 이전의 시대’, ‘율법의 시대’, ‘신의 은총의 시대

역사를 결정하는 것은 신의 섭리이며, 아주 제한된 인간의 자유의지만이 개입되는데 그것이 잘못 쓰이면 재앙이 연달아 발생 부패한 채로 불행에 연좌되어 끝이 없는 죽음이라는 결말로까지”(13.14) 인간을 이끌어 갈 것이다.

 

종말론적 평화이론

초기 저작에서는 스토아주의적 지혜를 가진 자가 이룬 내적인 평화, 즉 정념에서 자유로운 내면적 상태였으나 신국론19권에서 평화개념에 세 가지 변화를 도입한다.

평화는 지상의 삶에서 성취할 수 없는 것이므로 참된평화는 종말론적 성격을 가진다.

평화의 성취는 전적으로 신의 은총에 달려있다. 인간이 스스로 행복을 얻으려는 것은 이교도적인 견해이다.

평화는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에서의 평화이자 신과의 평화를 뜻한다.

평화가 지상에 속하지 않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정치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는 피안의 것이 됨으로써 역설적으로 그것은 지고하고도 매력적인 개념이 되었다. 이처럼 평화가 가진 종말론적 측면은 지상의 삶에 대한 광신적 위험을 제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평화에 관한 종말론적 사고방식은 또한 현실 국가 안에서나 국가 간 법질서 정립의 노력을 나쁜 평화’, ‘거짓된 평화로 평가절하한다. 우주 전체의 완전한 평화에 비하면 지상의 평화는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평화질서의 8단계

최초의 다섯 단계(인간 안의 평화): 신체 각 부분의 조화로운 일치로서의 평화, 이성 없는 것들 사이의 평화, 이성을 갖춘 영혼 사이의 평화, 신체와 영혼 사이의 평화, 인간과 신 사이의 평화.

여섯째 단계(인간과 인간 사이의 평화, 국가 내 평화): 가족 내에서, 지상의 나라의 명령-복종 관계에서 달성해야 하는 질서 잡힌 일치. 위계가 강조되며 아리스토텔레스가 구별한 지배의 다양한 형태에 대한 고려(정치학, 1)는 무의미해진다. 국가간 평화 개념이 없다는 것도 유념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지상의 평화적 질서를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는 없다.

일곱째 단계(천상의 나라에서의 평화): “하느님을 향유하고 하느님 안에서 서로 향유하는 더할 나위 없이 질서있고 완전히 화합된 사회적 결속”(19.17)

여덟째 단계(우주적 평화): 모든 것 사이의 조화와 일치가 이루어진 상태

 

종말론적 국가개념

정의가 없는 왕국이란 거대한 강도떼가 아니고 무엇인가?”(remota itaque iustitia quid sunt regna nisi magna latrocinia)(4.4): ‘국가에 정의가 없으므로라 읽으면 모든 국가는 범죄집단과 다르지 않다는 해석으로, ‘국가에 정의가 없는 한으로 읽으면 국가에 정의가 있어야 국가답다는 해석으로 나갈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국가가 이로움의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올바름을 공유하는 공동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을 따르지만 두 가지 차이가 있다. 1)키케로가 국가 공동체의 내적 조직 상태에 관심을 두었다면 아우구스티누스는 국가 전체의 부를 분배하는 것에 관심을 둔다. 2)국가에 요구되는 정의가 공직자의 그것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의미에서 올바른 지도자인지가 불확실하다.

국가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올바름 요건들: 법률, 구성원들 간의 일치, 분배에 있어서 공통의 이익, 평화에 대한 의지

 

정당한 전쟁의 기준

세 가지 기준: 1)그것이 정당한 권위에서 시작되어, 2)정당화될 수 있는 명분(ius ad bellum)에 기초하며, 3)올바른 신념에 따라 행해질 때 비로소 정의로운 것일 수 있다. 이때 전쟁에서의 올바름(ius in bello)힘에 대한 사랑, 복수를 위한 잔혹함, 양보 없이 거칠기만 한 적의는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파우스투스 논박(Contra Faustum), 22권 제74)

국가를 정의하는 요소들: 충분한 수의 사람들, 정해진 영토, 도시형태를 갖춘 거주공간,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 구성원들 간의 사회계약(여기서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의 국가(359a)에서 글라우콘이 하듯이 근대적 계약론을 비판한다), 법률 등이다. 특히 사회계약과 법률은 키케로의 국가론을 떠올리게 하는데 사회계약에 의해서만 국가는 이로움의 공동체로서의 정치적 통일체로서 존재할 수 있고, 법률에 의해서 올바름과 올바르지 않음의 공통성을 가질 수 있다.

 

종말론적 이원론에 대한 정치적 우려점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의로운 공동체와 지배자가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 참된 정의는 그리스도가 창건자이며 통치자인”(2.21) 공동체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이러한 종말론적 국가 규정은 현실정치에 대한 우려를 불러 일으킨다.

아우구스티누스적인 이원론이 아닌 제3의 길 또는 일종의 중재적인 길을 택해 영원한 행복, 완전한 구원과는 무관하지만 신의 은총과는 독립적으로 지상의 정의를 실현할 책임을 지난 법질서와 국가질서에 관한 논의는 토마스 아퀴나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후대에 끼친 영향

은총론’: 윤리적·신학적 아우구스티누스주의의 핵심으로 인간 자유의 제약, 신의 은총이 행복과 구원을 가능하게 한다.

신앙에 대한 이성의 독립성 부인: 인간학적 아우구스티누스주의와 결합한 인식론적·철학적 아우구스티누스주의에서 도출된 것으로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와 아퀴나스 등장 이전까지 강력한 영향을 끼쳤으며, 보나벤투라에 의해 다시 활력을 얻었다.

중세 교회의 세속권력과의 다툼: 지상의 나라는 정의롭지 않으므로 교회가 그것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펼쳐진 중세에 교황과 황제, 유럽 군주들 사이에서 벌어진 싸움의 원천이 되기도 하였다.

역사관: 12세기 오토 폰 프라이징Ouo von Freising은 세계사를 세상의 나라와 신의 나라 사이의 격렬한 투쟁으로 묘사하였으며, 아우구스티누스 역사사상의 핵심, 즉 목적론적이고 적극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진보에 관한 사상은 칸트와 헤겔에서는 법과 자유의 진보로, 오늘날의 실천적 계몽주의에서는 학문과 의학, 기술의 진보에 대한 사상의 바탕이 되었다.

에라스뮈스Erasmus, 마르틴 루터의 바울 해석과 은총신학,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자크 루소는 자신의 고백록을 쓰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을 본으로 삼았다.

볼테르, “마니교도였다가 금세 기독교인이 되었고, 방탕했다가 금세 비굴해졌으며, 관용적이었다가 금세 광신도가 되었던 이 아프리카인의 몽상 따위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