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과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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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슈미트(Carl Schmitt)로 바라본 우주세기 고찰 

 

인간은 땅의 존재, 땅을 밟고 있는 존재(Landtreter)다. 인간은 견고하게 정초된 대지 위에 서서 걸어가고 움직인다. 그 대지가 그가 서 있는 곳(Standpunkt)이자 그의 토대(Boden)이다. 이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시점을 얻으며, 이것이 그가 받는 인상들,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규정한다. 가시범위(Gesichtskreis)뿐만 아니라, 인간이 걷고 움직이는 형태, 그 형상(Gestalt)도 대지에서 태어나 대지 위에서 움직이는 생명체로서 얻어진 것이다. 독일의 법학자 칼 슈미트(Carl Schmitt)가 지적했듯, 인간의 세계관은 그가 서있는 세계와 분리될 수 없다.

우주세기의 지구는 세계정부 조직인 지구연방에 의해 하나의 대지로서, 하나의 세계관으로서 존재하고 있었다. 인간은 대지와 대지를 넘어, 지구를 밟고 있는 존재이자 중력에 사로잡힌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모든 인간에게 이 중력이 허락된 것은 아니었다. 극심한 기후위기와 생태계 붕괴, 빈부격차, 인구증가 등의 문제로 인해 연방은 과잉된 인구를 지구 밖으로 내쫓기 시작했다.

인간은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 개방적이고 확정적 질서와 경계도 모르는, 역동성이 지배하는 우주공간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마치 인류가 대지를 벗어나 해양을 취득하기 위해 드넓은 대양으로 나아갔던 모습과 닮아있다. 그러나 우주로의 확장은 바다의 그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었다. 우주엔 아직 인간이 머물만한 ‘섬’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주 밖으로 내던져진 인간들은 지구연방의 기술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태어난 인공 섬들이 라그랑주 점의 스페이스 콜로니들과 달의 정착지였다.

이들 스페이스 노이드들은 지구의 중력을 박탈당한 존재들이었지만, 여전히 지구의 중력에 묶여있을 수밖에 없었다. 연방이 주도하는 질서, ‘지구의 Nomos’가 그것이었다. Nomos는 희랍어로 ‘법’을 의미한다. 관리, 규율, 법칙 등의 뜻을 담고 있지만 더 나아가서 그 근원적인 의미를 따져볼 수 있다. 슈미트에 의하면 Nomos는 “모든 기준의 기초가 되는 최초의 측량(Messung), 최초의 공간분할과 분배로서의 최초의 육지 취득(Landnahme), 즉 원초적 분할(Ur-Teilung)과 원초적 분배(Ur-Verteilung)를 의미한다. 이렇듯 Nomos에는 원초적으로 공간의 취득과 분할이라는 의미가 포함된다. 다시말해, 인간의 세계관이 그가 서있는 세계와 분리될 수 없듯이, 법(Nomos)도 그 공간적•역사적 의미와 분리될 수 없다. 여전히 중력에 사로잡혀있는 스페이스 노이드들은 지구의 공간적•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획일화된 질서와 세계관에 묶여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지구연방의 우주진출은 16세기의 영국이 내륙 안에서의 폐쇄적인 사고를 극복하고 열린 해양을 종횡무진 휘저으며 약진을 이뤄낸 것과 일견 비슷하게 보인다. 영국은 바다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기술을 통해 식민지를 만들어내며 이 식민지 간의 유기적 연결망을 끊고 섬으로 고립시키는 ‘섬 만들기(Islanding)’ 통치 방식을 사용하였다. 우주 식민지도 사정은 비슷했다. 콜로니를 유지•보수하기 위해 지구 연방의 기술력을 필요로 했고, 인류가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생존재(공기, 물, 식량)를 공급받기 위해서라도 지구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었다. 예속과 허무가 넘실대는 우주공간을 한데 묶고, 그 공간의 보호자가 될 수 있던 것은 지구연방뿐이었다.

그러나 공간이 확대된 만큼 이에 합당하는 공간질서(Raumordnung)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우주는 너무 넓고, 콜로니들은 분산되어 있으며, 스페이스 노이드들의 경험은 어스 노이드의 그것과는 너무나 다르기 마련이었다. 인류는 우주를 통합의 공간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하고, 이 확대된 공간에 대한 취득을 둘러싼 역사적 투쟁 과정을 통해 새로운 질서, ‘우주의 Nomos’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 시작이 지온의 독립전쟁이었다.

이 모순의 폭발은 지온 이후의 수많은 반연방 운동들이 보여주듯,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했다. 이것은 앞서 언급했듯, 우주 공간에 맞지 않는 ‘지구의 Nomos’가 보편적으로 관철된다는 것이다. 연방은 이러한 상황 속에도 관성적으로 소외된 이들을 우주로 이주시켰다. 여기서 주객이 전도되는 변증법적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인류는 마치 지구를 고향의 대지로, 콜로니를 섬으로 생각했지만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광활한 우주에 떠 있는 보잘것없는 존재,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다. 연방이 지구에서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관성적으로 내보낸 인구를 흡수한 사이드들이 그 규모를 키워 연방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지구는 더 이상 고향의 대지가 아닌, 창백한 푸른 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후 연방에서 이탈한 스페이스 노이드들은 여러 신생 국가를 건국하게 되고, 연방은 세계정부의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 실로 우주세기의 역사는 (지구)중력에 대한 우주의 힘의 투쟁, 우주의 힘에 대한 중력의 투쟁이었던 것이다. 두 힘의 충돌 속에서 지구를 포함하는 우주적 공간은 광역(Grossraum)으로 재편되었다. 지구는 더 이상 유일한 중심이 아닌 하나의 섬으로 전락했다. 반면 섬들이었던 콜로니는 연방 제국주의의 질서에서 벗어나 탈섬화(Deislanding)되었고, 군도적 질서(Archipelagic Order)로 재구성된 ‘우주의 Nomos’를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우주 질서는 그렇게 두 힘이 투쟁하는 역사 속에서 다원화되었다. 낡은 힘과 새로운 힘들이 가장 격렬한 씨름을 벌이는 곳으로부터 정당한(Gerechte) 척도가 생겨나고 의미심장한 새로운 비율(Proportionen)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여기도 신들이 존재하며 주재하고 있다.

위대하여라. 신들의 척도는.

-Friedrich Hölderlin, Der Wanderer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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