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쿠악스에 대한 단상

건담 지쿠악스

기동전사 건담 지쿠악스 (2025)


이 글에서는 건담 지쿠악스를 독일의 철학자 헤겔(G.W.F Hegel)의 철학을 경유하여, 자유의 진정한 실현으로 나아가는 작품으로 독해한다. 또한 지쿠악스 특유의 경쾌하고 빠른 스토리 전개로 인해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이해되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의의를 나름대로 해석하고자 한다.

 

처음 건담 지쿠악스를 보고 이게 뭔가 했다. 마츄는 왜 유복한 삶을 버리는 선택을 하는지, 슈우지가 대체 뭐길래 마츄와 냐안은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는 건지 한 번에 납득되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자유라는 개념을 중심에 놓고 생각해보려고 한다. 마츄와 냐안은 부자유스러운 인물이다. 마츄는 자주 물구나무를 서곤 한다. 자신이 발 붙이고 있는 공간이 진짜가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페이스 노이드(콜로니 태생)인 마츄는 지구를, 지구의 중력을 동경한다. 마츄에게 지구의 중력 혹은 지구의 바다라는 공간은 자신의 자유를 실현시킬 수 있는 장소로 여겨진다. 냐안도 발을 붙일 공간이 없는 인물이다. 마츄와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그렇다. 냐안은 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생이별을 하게 된 난민 소녀이다. 마츄와의 첫 만남도 홀로 살아남기 위해 이런 저런 불법적인 일을 하던 와중에 마주치게 된 것이다. 냐안에게 원치 않는 일 따윈 없다. 살아남기 위해 종속이 너무나도 익숙해진 소녀이다. 그런 냐안에게도 꿈은 있다. 영주권 취득과 지온 공과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었다. 두 소녀의 부자유와 갈망은 비슷한 방향에 놓여있지만, 층위에는 차이가 있다.

 

반면 슈우지는 어떠한가? 슈우지는 자유로운 인물이다. 슈우지가 어디에서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무엇도 정해져있지 않기에 무엇이라도 대입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자유와 일맥상통한다. 마츄와 냐안이 슈우지에게 끌렸다면, 다른 무엇보다도 이 자유에 대한 동경이 가장 강했을 것이다.(물론 뉴타입간 사랑이 강력한 점도 이유가 되겠다.)

 

여기서 자유에 대해 한 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자유란 무엇일까? 내가 내 마음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태?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다소 헤겔스러운 규정을 가져오려 한다. 헤겔에게 있어서 의지의 본령은 자유이다. 내가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이 자유로울 수 있어야, 비로소 그 의지가 관철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헤겔은 자유로운 것은 곧 의지이기 때문이다.(die Freie ist der Wille).”라고 말한다. 헤겔은 흥미롭게도 이 자유를 1) 보편성, 2) 특수성, 3) 개별성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한다.

 

1)모든 규정들을 도외시할 수 있는 절대적 가능성에 의해 개인의 내면적 차원에서 성립하는 자유이다. 유체이탈적 자유, 종교적 자유라고도 볼 수 있겠다. 헤겔은 이를 오성의 자유라고 칭한다. 어떠한 것에 의해서도 구속받거나 규정되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자유이다.

 

2)는 상술한 1)과 반대되는 자유이다. 자아가 스스로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를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달리 바라보면 특정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자아는 특정한 무언가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는, 부정하고자 하는 욕구를 지닌 의지가 된다. ()를 부정하여 유()로 이행하는 것, 다시말해 추상성에서 벗어나 현실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3)은 다시금 보편성으로 복귀한 특수성이다. 스스로를 특수한 것으로 파악하면서도 동시에 보편성 속에서 머무르고 있는 규정성 속의 자유가 이 단계에 해당된다.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자기 자신을 특수화하면서도 동시에 그 상황으로부터 일정하게 벗어나 있는 자유의 상태를 뜻한다. 말이 어렵지만 구체적 예시를 통해 생각해보자면,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도 동시에 그 속에서 나를 잃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본래의 자기 자신에 더욱 충실해질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 최고의 공동체적 관계가 최고의 자유인 것이다. 헤겔은 이를 진정한 의미의 자유라고 말한다.

 

헤겔이 말한 진정한 의미의 자유는 지쿠악스에서 키라키라라고 부르는 순간, 반쯤 그 모습을 드러낸다. 세계와 개인이 일치하는 순간, 자유가 확대되는 순간이 바로 그것이다. 헤겔이 말했듯 자아가 세계를 알고 깨우칠 때(인지할 때), 아니 그보다도 이 세계를 개념적으로 파악하게 될 때” “세계와의 일체감(一體感) 속에서 평안함을 누리게 된다. 이 지점에서 냐안이 키라키라를 경험하며 내 생각대로 세상이 응답해줘. 자유로워!”라고 말한 부분이 이해된다. 그런데 키라키라는 아무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사이코뮤가 탑재된 기체에 탑승해야하고, 탑승자가 뉴타입이어야 한다.

 

클랜 배틀 이후 붉은 건담의 제크노바와 슈우지의 실종을 기점으로 마츄와 냐안은 갈림길에 서게 된다. 마츄는 샤리아와, 냐안은 키시리아와 함께 한다. 이 전개에서 재밌는 부분은 권총이다. 마츄도 샤리아에게 권총을 받고, 냐안도 키시리아에게 권총을 받는다. 권총은 폭력의 수단, 달리 말하면 의지의 관철 수단이다. 이것은 또한 부정의 수단이기도 하다. 자유란 본디 부정할 수 있는 힘이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무엇이든 부정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따라서 권총이 함의하는 바는 자유롭게 부정을 관철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는 샤리아 불의 과거를 돌아보면 더욱 의미심장해진다. 샤리아 불은 과거 헬륨-3라는 에너지 자원을 채취하기 위해 목성으로 파견된 선단을 지휘했다. 그러나 과도하게 방출된 방사선의 영향으로 우주선의 항행 시스템이 고장나 우주에 고립되어 버리는 신세가 된다. 서서히 죽음을 기다리던 샤리아는 처음의 사명감을 비롯한 그 어떠한 의미도 무의미가 되어버리는 경험을 한다. 샤리아는 자기 자신을 포함한 누구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게 된 그 순간 역설적으로 진정한 자유를 느끼게 된다. 샤리아는 자살을 결심하는데, 이때 사용하려던 권총이 바로 마츄에게 건네어준 그 권총이다. 절대적인 자유가 주어졌을 때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통찰을 샤리아는 경험한 것이다. 이때의 자유는 헤겔에게 있어선 절대적 자유라 칭해지는 그것과 같다.

 

키시리아 역시도 냐안에게 권총을 건네어준다. 그러나 두 의지의 관철 수단에 담긴 의지는 사뭇 다르다. 키시리아는 뉴타입에게 정의 따위 필요 없어. 강한 힘만 있으면 돼.”라며 뉴타입을 전쟁 도구로 바라보는 굴절된 뉴타입관을 권총에 담아 냐안에게 건네었고, 샤리아가 건네준 의지는 스스로의 의지와 생각을 가지고 현실에 맞서 타인과 교류하며 소통하면서 살아가는 자유인이라는 뉴타입관이었다.

 

다시 돌아와서, 지구에 도달한 마츄는 의아해한다. 그토록 갈망하던 지구의 중력은 콜로니의 그것과 별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마츄의 갈망은 해소되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 마츄가 발 붙일 곳이 꼭 장소로서의 지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마츄는 지구에서 라라아 슨을 마주치게 된다. 이 세계의 라라아와 평행세계(기동전사 건담)의 라라아를 차례로 조우한다. 라라아는 이 세계를 구성하는 인물이다. 그냥 지쿠악스 세계와 동치시켜 봐도 무방하다. 이 세계를 만든 것이 다름아닌 라라아의 의지였기 때문이다. 정사와 다르게 해당 작품에선 라라아가 아닌 샤아가 건담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에 충격을 받은 라라아는 제크노바를 일으켜 샤아가 죽지 않는 평행세계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러나 평행세계마다 건담이 나타나 샤아가 죽는 전개만큼은 바꾸지 못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시도한 것이 바로 샤아의 건담 탈취 성공을 전제로 하는 지쿠악스의 세계관이다.

 

여기서 슈우지의 의의는 거꾸로 서게 된다. 슈우지는 라라아가 만든 평행세계들에서 부정을 담당하는 존재이다. 라라아가 세계를 원하는 방향으로 구축하는데에 실패할 때마다 슈우지는 다음 평행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라라아를 죽인다. 라라아가 원하는 세계를 만들 수 있도록 라라아를 계속 죽여야하는 모순 속에 빠진 부자유스러운 인물로 전도된다. 그런데 지쿠악스 세계에도 문제가 생겼다. 라라아가 겨우 살려낸 샤아가 라라아를 부자연스러운 존재로 치부하며 제거하려는 의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장미의 소녀를 죽여서, 이 세계를 끝내겠어. 건담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라는 슈우지의 선언과 함께 제크노바 속에서 건담이 등장하여 라라아를 살해해 이 세계를 다시 리셋시키려고 한다.

 

이런 슈우지를 막을 수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마츄뿐이다. 마츄와 냐안은 둘 다 의지를 이어받았다. 그러나 냐안에겐 한계가 있다. 타인의 종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냐안은 키시리아의 의지라는 외피 속에서 슈우지를 만나겠다는 의지를 담아 요마간토를 작동시켜 수많은 인명 사상을 낳았다. 냐안에게 자신의 온전한 의지라는 것은 없었다. 그것이 냐안의 한계였고,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극복한 건 키시리아가 준 권총으로 우연히 키시리아를 쏜 순간이었다. 냐안이 키시리아의 죽음 이후 갈 곳이 없어졌다고 한탄한 것도 의미가 통한다.

 

마츄는 권총을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고 운명을 개척하는곳에 사용한다. 트리거를 쏴서 오메가 사이코뮤의 리미터를 해제한 것이다. 이후 오메가 사이코뮤의 본체인 엔디미온 유닛이 각성하게 되며 슈우지와 키라키라 속에서 만나는 데에 성공한다. 처음의 마츄:부자유-슈우지:자유라는 도식이 마츄:자유-슈우지:부자유로 전도된다. 마츄는 슈우지와 만나 누군가가 지키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는 진정한 뉴타입이 아님을 설파한다. 이는 스스로의 의지와 생각을 가지고 현실에 맞서 타인과 교류하며 소통하면서 살아가는 자유인이라는 샤리아의 뉴타입관을 계승한 것이다. 마츄에게 설득당한 슈우지는 이 세계선이 만들어진 것은 마츄를 만나기 위함이었다는 말을 남기고 평행 세계의 라라아와 함께 원래 세계로 돌아가게 된다. 마츄라는 자유의 화신이 가짜 세계를 진짜 세계로 거듭나게 하고, 슈우지를 부자유의 악무한(惡無限)속에서 벗어나게 하여 진무한(眞無限)의 길로 해방시켰으며, 평행 세계의 라라아로 하여금 샤아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진정한 뉴타입으로 거듭나게 하였고, 뉴타입을 위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지오니즘의 고차원적 반복의 토대를 샤리아에게 마련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슈우지를 떠올리며 언젠가는 다시 만날 거야. 건담이 이렇게 말했어.”라고 말한 것은 뉴타입으로서 세계와의 진정한 일체감을 경험한 사람이 마츄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결국 건담은 로봇 이야기가 아니다. 중요한 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다. 건담은 뉴타입이라는 감정과 감각의 확장을 통해 타자, 병기, 나아가 우주적 존재와 직관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존재의 능력을 보조해주는 신체의 연장선에 지나지 않는다. 지쿠악스가 진정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샤리아의 뉴타입관처럼 마츄가 스스로의 의지와 생각을 가지고 현실에 맞서 타인과 교류하며 소통하면서 살아가는 자유인이 되어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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