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란 무엇인가? - 헤겔의 근대 인식

방랑자
Der Wanderer über dem Nebelmeer, 1818



헤겔의 근대 인식 공사분리

독일의 철학자 헤겔(G. W. F. Hegel, 1770-1831)의 철학 체계에는 여러 빛나는 통찰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중요한 부분 중 하나로 근대이해의 중요한 키워드가 되는 공사(公私)의 분리를 이야기해 볼 수 있다. ‘근대는 전()근대와 다르게 인간 삶의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분화되어 있다. 이러한 이해의 출발점은 루소(J.-J. Rousseau, 1712-1778)까지 소급될 수 있겠으나, 이를 분명하게 표출하여 근대성의 위기에 대해 성찰한 것은 바로 헤겔이다. 다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한 마디를 보태자면, 헤겔이 직접적으로 공사분리라는 말을 쓴 것은 아니다. 헤겔은 ‘(부르주아로서의) 시민(Bürger)’공민(citoyen)’으로 시민사회의 구성원을 나눠서 파악했다. 이는 루소가 사적인 인간(homme)’공민(citoyen)’을 구분한 것에 각각 대응한다. ‘공사분리라는 말은 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분화되어 서로 괴리되어 있는 현상을 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공사분리란 개념은 대체 어떠한 논점을 형성하고 있는지를 알아보자.

 

근대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자기완결적이고 통일적인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공적인 시민(citoyen)’과 사적인 인간(homme)’으로 분열되어 끊임없이 고뇌하는 모순적인 존재라는 것이 공사분리라는 통찰이다. 다시 말해 근대인은 정치생활과 경제생활의 분립 속에서 그 총체성을 상실해버렸다는 말이다. 헤겔의 통찰은 단순히 분열의 존재를 지적하는 것을 넘어서 근대 자본제 사회 내에 그러한 분열을 해소하는 계기가 있음을 밝혀내었다. 근대 자본제 사회가 공적인 시민의 활동 영역으로서의 정치사회와 사적인 인간의 생활세계로서의 시민사회로의 분립을 전제로 성립하며 그것의 재생산 과정에서 다시금 그와 같은 분리를 산출해낸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하나의 총체적인 사회 인식의 틀로 체계화하며 그 분리의 해소 방안까지 제시한 것은 헤겔의 빛나는 업적이다.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어 있기에 근대 자본제 사회에서 개인은 어떠한 정치적 생활이 없이도 실질적인 삶의 조건을 제공해주는 경제적 생활의 영역 안에서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다. 오늘날 정치에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가는 이들이 다수 존재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근대 사회가 제공해주는 공사분리라는 조건 덕분이다. 이런 현상을 보았을 때 의아함이 들 수도 있다. 바로 정치에 대한 효용성에 대한 문제가 그것이다. 우리가 굳이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더라도 먹고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세상이 되었는데, 정치가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일까? 하지만 인간은 그 자신의 존재적 가치와 의의를 증명하고자 하는 인정 욕구를 지닌 존재이다. 정치란 그저 경제생활에서의 문제를 수동적으로, 그리고 기계적으로 해소하는 부차적이고 기능적인 장()일 뿐만 아니라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또 획득하는 가치의 영역이기도 하다. 인간이 스스로 가장 자유로워질 수 있는 때는 바로 자신의 생활세계에 그러한 가치와 의의를 부여할 수 있을 때이다.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는 것에서 출발한 근대사회가 그러한 분리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재통일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인간에게는 인간 존재의 자기 증명의 욕구 혹은 자기 의지를 관철하려는 측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의지가 공동체의 의지와 합치되어 개인이 공동체를 경유해 스스로의 존재 의의를 획득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는 가장 자유로운 상태에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진정한 자유란 개인적 의지(사적 의지)와 공동체적 의지(공적 의지) 간의 합일적 관계속에서 구현된다.

 

이러한 헤겔의 문제의식과 그 대안, 즉 공사분리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정체(政體)의 제시는 헤겔 이후의 철학자들의 사유에서도 공통되어 나타나는 바 있다. 마르크스도 그렇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래 마르크스를 자유와는 거리가 먼 폭력 투쟁의 사상가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팽배했고, 그 이후 그런 경향은 다소 약해졌다지만 오늘날 한국에서 마르크스를 오해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이러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특히나 마르크스가 자신이 생각하는 공산주의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기에 이러한 불투명한 미래상이 그의 이론의 한계를 입증하는 증거라고 이해하는 이들도 대다수이다. 이러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마르크스를 바로 이 헤겔적 맥락에서, 또 헤겔 비판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공사분리현상은 대체 왜 생겨난 것일까? 헤겔과 그 뒤를 이어 마르크스가 지적한 바로 근대의 분업의 원리를 기초로 하여 그것이 성립했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고, 전문화되고, 세분화되는 것은 그것이 분업의 원리에 기초하여 조직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에서도 그렇다. 여기에서 오는 또 하나의 의문이 있다. 그토록 이러한 공사분리현상이 문제적이라면, 이것을 즉자적으로 지양하거나 혹은 아예 분리조차 되지 못하도록 통일시키려는 시도를 할 수는 없는 걸까? 이에 대한 답으로는 헤겔이 늘 강조하듯 통일을 위해 분리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사회는 통일되기 위해 분리되어야 한다. 분리조차 되지 못한 즉자적인 상태가 분리를 기초로 통일을 이룬 즉자-대자적 상태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말이 어렵지만,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분화해야 비로소 서로의 반성 작용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헤겔이 생각하는 자유스스로를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이는 헤겔의 주저인 정신현상학에서도 확인이 가능한데, 의식이 전개되며 자기의식에 도달해야만 비로소 인식 주체가 반성적 작용을 통해 대상에 대한, 보다 완전한 인식에 가닿을 수 있다. 이것은 헤겔의 법철학에서 말하는 인륜적 국가와도 연결되는 것이다. 자유의 확대를 위해, 반성적 작용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근대의 공사분리현상은 긍정되며 또 부정될 필요가 있다. 긍정과 부정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이것 역시도 바로 변증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근대 사회, 특히나 공화정적인 질서에서 이러한 공사분리가 즉자적으로 지양되는 계기가 존재한다. ‘전제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마르크스는 일찍이 아시아적 전제국가를 분석하고 개념화하며 공과 사가 분리되지 않은, 그것이 전제 군주개인의 신체 속에서 혼재되어 나타나는 특질을 분석한 바 있다. 어떻게 보면 아시아적 전제국가라는 말에서 유럽 중심적인 태도를 엿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로 이 개념을 다루지 않고 넘어가서는 곤란하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공화정에서는 이러한 전제국가적 특질로 회귀하려는 계기가 분명 존재한다. 공화정에서 군주가 가장 먼저 도려내어지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싸움 속에서 행정부 우위의 권력이 확립되고, 대중 선동적 정치를 기반으로 입법부의 견제로부터 멀어지려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마르크스는 일찍이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이라는 저작에서 이러한 현상을 보나파르티즘으로 규정한 바 있다. 이 현상을 앞으로의 서술에서는 전제주의로 규정할 것이다.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은 분리되어야 한다. 이 분리조차 나타나지 못하는 동양적 특질, 전제주의는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모두 정치인개인의 신체에서 혼재되어 있다. 이것은 근대의 일반적 특질에 반하는 반()근대적 특질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태에선 사적인 영역의, 인민들의 생활세계로부터 올라오는 의지가 공적인 영역으로 제대로 반영될 수가 없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헤겔적 대안에 내재되어 있는 모순으로 존재한다. 헤겔과 마르크스를 탐구하며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어떻게 매개할지, ‘전제주의적 특질을 어떻게 극복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바로 근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견지해야 할 지점이다.

 

공사분리를 판별하는 기준 - 소경영(小經營)의 존재 양태에 따라

우리는 앞서 헤겔이 정식화한 근대의 공사분리라는 개념을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 아직 구체적인 파악까지는 닿지 못한 상태이다. 이러한 근대의 현상을 설명하고 규정하기 위해, ()근대의 특질로써 나타나는 공사통일을 다뤄보려 한다.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틀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가령 내가 참고한 백종현, 김민혜 등의 연구에서는 전근대적 공사통일 경향을 철학사적 맥락으로 파악하여, 헤겔 이전 정치철학들에서 나타나는 공민과 시민의 즉자적인 일치 등을 그 근거로 다룬다. 예컨대 고전 고대 그리스의 경우, 육체 노동이 모두 노예에게 지워져 사사로운 일(oikonomia)에서 벗어나게 된 사인으로서의 시민(bourgeois)들이 공공의 일(res publica)에 온전히 종사할 수 있었다는 설명처럼 전근대의 시민사회와 국가는 즉자적으로 일치되어 있던 관계였다고 한다. 이것은 물론 적확한 설명이다. 실제로 헤겔 이전의 칸트에게서도 이러한 경향이 파악된다. 다음은 칸트의 법이론을 인용한 부분이다.

 

시민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투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투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는 것은 국가 공동체의 부분으로서뿐만 아니라 구성원으로서, 즉 다른 사람과 더불어 공동체에서 자신의 의사에 따라 행위하는 국가의 구성원이 되려는 시민의 자립성을 국민 속에서 전제한다. 그러나 저 자립성이라는 자격은 불가피하게 능동적 시민과 수동적 시민을 구별하도록 한다. 상인이나 수공업에 종사하는 장인, (공무 담당자에 속하지 않는) 하인, (자연적으로나 또는 시민적으로) 미성년인 자, 모든 규중부인들, 그리고 자신의 실존(생계와 방호)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자기 자신의 경영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처분 외에) 타인의 처분에 강제 받게 되는 사람들, 이들 모두는 수동적 시민에 속하게 된다. 이러한 모든 사람은 시민적 인격을 결여하고 있다. 그들의 실존은 말하자면 한낱 부속물이다.” (Kant, Metaphysik der Sitten, Rechtslehre)

 

보다시피 칸트는 ’(oikos)이라는 사적 영역에서 생명 유지를 위한 기초적 경제 활동을 영위하는 자들은 단지 가정 사회”(societas domestica)에 속할 뿐이고, 자기 자신을 경영할 수 있는 주체인 능동적 시민만이 시민사회(societas civilis) 곧 국가(Staat)의 구성원국민(Staatsbürger)”으로 간주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헤겔은 시민사회의 구성원을 그런 식으로 제한하지 않았다. 헤겔이 파악한 “(부르주아로서의) 시민(Bürger)”은 필요 욕구의 입장에서 본래적으로 문제가 되는 인간이라고 불리는 표상의 구체적 존재자로서 수동적시민과 능동적시민을 구별한 것이 아니었다. 이로부터 앞서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즉자적으로 일치시키는 이해는 폐기된다. 하지만 헤겔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생존의 필요 욕구에 따라 사사로운 일(oikonomia)에 매여 있는 사인으로서의 시민(Bürger)국가의 절대성을 의식하고 공공의 일(res publica)을 위해 자기의 소유와 목숨을 희생하는 공민으로서의 시민(citoyen)이 될 때, 비로소 제대로 된 국가의 국민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이렇듯 헤겔이 보여주는 시민사회개념의 중대한 변화는 시민사회국가의 분리를, 다시 말해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괴리를 분명히 드러내었다.

 

앞서의 설명, 즉 철학사적 맥락으로 고대적 자유근대적 자유를 나눠서 파악하려는 방법은 물론 적확하고 유효한 설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필자가 공부하며 느낀 바로는 이러한 설명으로 전근대 역사에서 나타난 여러 형태의 공사통일혹은 공사혼재현상을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전근대를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틀에 위치해서 좀 더 면밀한 분석을 해보려 한다. 헤겔의 이론 체계가 그 자체로 근대 사회에서의 내용형식의 불일치를 드러내고 있다면, 그것이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서, 달리 말하면 어떠한 생산양식의 변동 과정 속에서 배태되었는지 해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생산양식을 도식화하여 표현하면 [생산 = 생산수단 + 노동력]이 된다. 이 간단해 보이는 도식을 각 역사적 단계의 분석틀로 사용했을 때 우리는 소유 관계를 매개로 하는 가족의 존재 양태와 그것들의 자연과의 상호작용으로서의 물질대사의 형태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유물론적 역사 인식이란 1)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라는 파악 방법과 2)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라는 파악 방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두 가지의 파악 방법은 가족의 존재 양태를 매개로 하여 하나로 통일된다. 예컨대 남성 가부장에 의한 여성의 노예화 및 재산의 남자의 수중에의 집중하에 따른 가부장적 일부일처제는 원시적·자연발생적 공동소유에 대한 사적 소유의 승리를 기초로 한 최초의 가족 형태였다. 일부일처제적 가족 공동체는 사적 소유의 경제적 토대이자 그것이 사회 내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사적(私的)인 소유에서의 사()란 그 역사적 맥락에서 보았을 때 사실상 남성 가부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가족의 형태에 따라 공동 소유의 형태를 취할 수도, 사적 소유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가족 관계로부터 드러나는 이러한 소유관계는 공적 영역에 대비되는 사적 영역이 얼마나 확립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서가 된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면 인류사의 태초인, 혈연적 관계로 구성된 자급자족적인 씨족 공동체로 구성되어 있는 원시공동체적 사회의 경우, 그 낮은 생산력으로 인해 개인들이 혈연적 관계를 통해 하나의 집단으로 연결되어 함께 노동하지 않고서는, 다시 말해 집단 노동을 하지 않으면 개인의 생존이 보장될 수 없었다. 이런 사회에서는 개인이란 자립할 수 없었기에 집단 속에 융해된 채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인류사의 전개가 생산력 발전에 의해 추동된다고 할 때 그것을 평가하는 기준은 바로 이 개인이 점차로 공동체로부터 분리되어 자립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된다. 공동체에 의해 집단적 생산을 행하며 자급자족하던 공동체로부터 점차로 개인이 분리되어 개인적인 노동만으로도 자급자족해 나갈 수 있는 경제적 영역을 확보해 나가는 과정, 그것이 바로 전근대사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이었다. 이는 곧 씨족적 공동체에서 일부일처제적인 가족 공동체로 공동체의 단위가 축소되어 가는 과정을 의미했다.

 

근대 사회란 그렇게 축소되어 자립이 가능해진 일부일처제적인 가족 공동체에 기초하여 성립한다. 일부일처제적인 가족 공동체가 지연과의, 그리고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자급자족하며 자립한다고 할 때, 가부장에 의해 경영되는 이 경제적 단위로서의 가족 공동체를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소경영생산양식(小經營生産樣式, Kleinbetrieb)’이라 부른다. 여기서 소경영의 경영 주체인, 소경영에 기초해 발전하는 개인은 앞서 언급한 가부장이다. 이 소경영생산양식에 기초하여 개인은 자신의 의지를 자연에 관철시켜 자급자족을 해내고 그에 기초하여 타인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하나의 사회 공동체를 구성해 나갔다. 앞서 헤겔이 파악한 근대 국가 또한 이 일부일처제적 가족 공동체를 재료로 삼아 전개되었다. 헤겔에 있어 일부일처제적 가족 공동체가 개인의 자유를 위한 논리적 조건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도출되었다면, 마르크스에게 있어 이러한 가족 공동체는 역사적 전개 속에서 끊임없이 형성되어 온 역사적 구성물이었다. 즉 근대적 개인을 뒷받침하는 사적 소유 등의 여러 조건은 실상 이 소경영생산양식의 발전에 의해 규정되며 전개되어 온 것이다.

 

다시 공사통일의 해체로 돌아가보자. 이것 역시 같은 과정이다. 소경영이 자립하여 공동체로부터 분리되는 과정. 사적 영역으로서의 소경영이 자립하는 과정이다. 우리가 역사를 분석하며 공사가 혼재되어 있는 양태를 구별하고 그것이 해체되는 과정을 다루기 위해서는 소경영(=일부일처제적 가족 공동체)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 모든 역사 이론을 상세히 전개하기에는 논의가 길어진다. 그렇기에 소경영의 존재 양태에 따른 구별만 간략히 설명하고, ‘공사통일경향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확인하고자 한다.

 

먼저 아시아적 형태에서는 소경영이 점유자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공동체로부터 자립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동체와 구별되는 사적 영역으로서의 소경영이 존재하지 않아 공사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 공사 혼재의 상황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 공사의 혼재는 어디서 나타나는가? 앞서 이야기하였듯, ‘전제 군주의 신체 내에서 나타나게 된다. 좀 더 풀어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한편으로는 소경영을 뒷받침하는 국가 기구(=전제국가)를 대표하는 존재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왕실을 비롯한 전제 군주가 포함된 지배 계층의 사적인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존재로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혼재되어 있다. 여기서 사적 주체로서의 소경영은 공동체와 분리되지 않는다. 따라서 도시와 농촌의 분리 또한 일어나지 않는다.

 

고전 고대에서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공민이 사적 인간인 노예와 대비되면서, 동시에 공동체를 매개로 하여 공유지와 대비되는 사적인 토지 소유자로서 존재한다. 노예와 사적 소유자로서의 공민은 같은 사()라고 하지만 층위가 다른 것이다. 공민과 사인으로서의 시민과 노예의 대비, 그리고 공동체의 공유지와 시민의 사유지의 대비가 동시적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공민과 사유지가 하나의 통일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공동체를 매개로 해서 소경영이 성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분적인 사유자로서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소경영자로서의 시민=전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서의 도시 공동체가 바로 아테네, 로마 등의 도시 공동체였다. 여기에 사적 소유자들이 모여서 시민=전사 공동체를 이루고 있기에 도시와 농촌이 구별되는 것이고, 도시의 사적 소유자들이 농촌을 지배하는 것이었다. (도시 > 농촌)

 

마지막으로 농노제인 게르만적 형태에서는 소경영이 한 곳에 모여 공동체를 이루거나 그에 속해 있지 않다. 오히려 게르만적 형태에서는 소경영(=농노)들이 분산되어 존재했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가 아니라 농촌이 지배적인 형태가 나타나게 된다. (도시 < 농촌) 이제 공동체란 공동체 자체가 사적 소유의 근거였던 고전 고대와 다르게 이 소경영들, 농노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뭉쳐질 때 나타나게 된다. 예컨대 공동체의 공유지는 소경영을 뒷받침해주는 보조물로서만 존재한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게르만적 형태에서의 공유지는 그저 소경영들의 필요에 따라서만 나타난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촌락 공동체의 공유지는 농노들이 키우는 소나 말 등의 가축들의 방목지로 사용되었다. 거기서 나오는 가축의 분뇨를 비료로 사용하는 등, 소경영들이 공유지에 그 경영 비용을 전가하는 정도의 역할이었다. 이렇듯 게르만적 형태에서의 공동체란 고전 고대적 형태에서의 그것과는 다르게 농노들이 서로 연결되어서 형성되는 것에 지나지 않았고, 농노들은 자신들의 토지 경영을 보완해주는 공유지, 공동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을 뿐이었다. 따라서 널리 퍼져 있는 농노들이 살고 있던 농촌이 지배적인 형태이고 수공업자들이 모여서 만드는 도시 공동체란 기껏해야 농노들의 촌락 공동체를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공동체들 자체가 사적 소유자들의 연합체로서만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와 대비되는 뚜렷한 공적 영역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이 사적인 농노(=소경영)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공동체를 영주가 지배한다고 할 때 그 영주들의 지배는 농노와의 사적인 계약 관계, 인적 관계에 기초한 것으로 영주들과 그에 종속된 기사, 종사 등의 여러 가신들과의 관계도 그렇지만 영주와 농노 간의 관계도 사적인 형태로서만 나타난다. 더 나아가서 영주가 군사권, 행정권, 재판권 등의 모든 권리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와 농노의 관계는 사적인 계약 관계이자 곧 정치적인 관계를 의미하게 된다. 농노가 영주에게 지대를 바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지대의 납부라는 경제적 관계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영주와 농노의 예속적 관계를 드러낸다. 여기서 경제적 관계가 곧바로 정치적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다시 말해 정치와 경제의 일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일치가 이 지점에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다시 앞서의 논의들을 정리하여 결론을 이야기해보자. 인류사의 초기를 포함한 전근대에서는 인류의 생산력 수준이 낮아 개인이 공동체로부터 자립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인류사의 발전을 생산력의 발전으로 놓고 보았을 때, ‘소경영이 공동체로부터 자립하는 존재 양태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회적인 자립 단위가 공동체에서 소경영’, 심지어는 개인까지도 축소되는 경향에 따라 원시 공산제 사회부터 노예제, 농노제, 근대 자본제 사회까지 구분할 수 있다. 인류의 생산력이 낮은 수준이었을 때는 사회적 분업을 신분제적 질서를 통해 이루어내기 위해서라도 타인의 지배가 필요하였다. 이러한 신분제적 질서 속에서 사회적 분업과 재판권을 비롯한 영주 등의 권리가 일치되며 경제와 정치의 혼재, 일치가 나타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근대 국가에서는 그러한 신분제적 질서가 무너지고, 자본제의 유통망이 그 사회적 분업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생산력의 충분한 발전으로 인해 소경영이 공동체적 질서를 경유하지 않고서도 자본주의적 유통망을 통해 외부적으로 자유롭게 된 것이다. 마르크스의 지적처럼 근대인은 자신의 노동력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지만, 동시에 노동력을 처분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굶어 죽을 자유라는 이중의 자유를 누리게 된다. 이 지점에서 헤겔의 지적처럼 시민사회능동적 시민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생존의 필요 욕구에 따라 사사로운 일(oikonomia)에 매여 있는 사인으로서의 시민(Bürger)까지 포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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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Karl Marx, <자본론 I>, 강신준 역, 도서출판 길, 2008

- G.W.F Hegel, <법철학>, 임석진 역, 지식산업사, 1992

- Karl Marx, <헤겔법철학비판>, 강유원 역, 이론과실천, 2011

- 손민석, <우리는 왜 대통령만 바라보았는가>, 마인드빌딩,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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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rl Marx, <자본주의적 생산에 선행하는 제형태>, 성낙선 역, 신지평,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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