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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kolay Nikolayevich Ge, “What is Truth?” Christ and Pilate, 1890. |
우리의 모든 지식은 참된 지식이 아니면 안 된다. 만일 우리가 어떤 것을 잘못 알고 있다면, 그것은 사실은 지식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거짓된 지식은 지식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참된 지식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착오나 오류에 빠짐으로써 거짓된 지식을 가지는 수도 있다. 그리하여 일상생활에 있어서나 학문에 있어서나 우리는 참과 거짓, 진리와 허위를 가리려고 노력하며, 특히 학적 인식의 목적은 진리를 파악하는 데 있다.
모든 지식은 판단의 형식을 가지고, 명제로서 언표된다. 따라서 진리 문제는 판단의 진위 문제로 귀결된다. 고전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384–322 B.C.)는 존재하는 것을 존재한다고 말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참이라고 보았다. 이는 판단이 객관적 실재를 있는 그대로 반영할 때 참이 성립한다는 입장이다. 이후 중세 스콜라 철학에서도 이를 사물과 지성의 일치(adaequatio rei et intellectus)로 정식화하였다.
또한 알프레드 타르스키(Alfred Tarski, 1901–1983)는 그의 『진리의 의미론적 개념』(The Semantic Conception of Truth)이라는 논문에서, 진리를 언어적 차원에서 정의하며, “X는 참이다”와 “X”가 동치임을 통해 진리 개념을 형식적으로 정식화하였다. 즉 '참'이라고 하는 말은 이 경우 어떤 판단의 술어가 되어도 그 판단의 본래의 의미를 조금도 바꾸지 않는다고 하는 특수한 성격을 가지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참'이라는 술어를 어떻게 생각하여야 할 것인가?
타르스키는 여기에서 언어의 계층성을 들고 나와 대상 언어(object language)와 고차 언어인 메타 언어(meta-language)와를 구별한다. 그에 의하면 진위의 개념은 대상 언어의 어떠한 의미 범주보다도 더 고차의 범주에 속하는 개념이므로 대상 언어에 속하는 문장 S의 진위는 메타 언어에 있어서 논의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는 "대상 언어에 속하는 문장 S를 고차 언어에 있어서 표시하는 명칭을 X라고 하고, S를 고차 언어로 번역한 표현을 P라고 할 때에, P가 성립하는 경우에만 X는 참이다"라고 하는 진리 규약을 이끌어 내었다. 이러한 규약에 따라 문장의 진위를 정의하면, P가 모든 개체에 관해서 성립하는 경우에만 P는 참이요, P가 어떠한 개체에 관해서도 성립하지 않는 경우에만 P는 거짓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눈이 실제로 흰 경우에만 '눈은 희다'고 하는 판단(또는 문장)은 참이라고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판단과 실재와의 일치라고 하는 고전적 진리관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정의는 단지 진리에 관한 의미론상의 정의에 지나지 않으므로 여기에서는 판단의 내용이 실제로 성립하느냐 성립하지 않느냐의 검증은 일단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적어도 판단이 객관적으로 성립하는 사태를 올바로 파악하였다고 생각되지 않는 한 그 판단을 진리라고는 부르지 않으므로, 판단의 진리성이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결정되는, 참된 판단은 실재와 일치하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판단과 실재와의 일치를 진리의 정의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진리론에 있어서는 진리의 의미, 진리의 개념에 관한 문제보다는 오히려 진리의 기준에 관한 문제가 더욱 중요한 문제라고 할 것이다. 진리의 기준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서 진리 개념의 정의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판단의 진위를 판정할 수 있는가? 이에 관한 주요한 학설은 대응설(the correspondence theory), 정합설(the coherence theory), 실용주의(pragmatism)의 진리관으로 대별(大別)할 수 있다.
대응설은 판단이 객관적 실재와 대응할 때 참이라고 본다. 이는 상식적이고 직관적이지만, 판단과 실재를 직접 비교할 수 없다는 점과 감각 경험 오류 가능성 등의 한계를 가진다.
정합설은 판단이 다른 판단들과 모순 없이 하나의 체계 속에 정합될 때 참이라고 본다. 이는 수학이나 논리학과 같은 형식적 지식에 적합하지만, 서로 다른 정합적 체계가 동시에 성립할 수 있으며 실재와의 연결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실용주의는 판단이 실제적 효과나 유용성을 가질 때 참이라고 본다. 퍼스(Charles Sanders Peirce, 1839-1914),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 듀이(John Dewey, 1859-1952) 등에 의해 전개되었으며, 진리를 생활과 연결한다는 장점이 있으나 유용성의 기준이 모호하고 상대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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