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케로 『국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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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us Tullius Cicero

 

사상의 정치경제학적 배경

로마는 농경 집단에서 시작하였다. 로마의 귀족들은 자신의 영토를 장악하였던 지주들이었는데, 더 정확히 이야기해보자면 농토를 공동체(=국가)로부터 분배받아 소경영(小經營, Small-scale mode of production)을 행했던 자영농들이었다. 이 소경영자들은 타인을 노예화함으로써 스스로 노예주(奴隸主)로 전화한 이들이다. 이러한 생산양식 체계를 이른바 노예제 소경영이라 한다.

그리스도 그러했지만, 로마의 경제적 토대도 노예제로 규정할 수 있다. 이것은 오늘날 흔히 상상하는 대규모의 노예제와는 거리가 멀다. 물론 로마 공화제의 말기엔 대규모의 노예제라티푼디움과 같은가 등장하지만, 그 이전엔 앞서 언급한 노예제 소경영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나타난 노예주인 시민들 간의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에 기초한 공화정이 그리스로마의 정치체(政治體)를 형성하고 있었다.

공동체를 국가와 등치시킬 수 있는 이유: 미개단계에서 막 벗어난 인류는 다양한 공동체들 간의 투쟁 속에서 자신이 점유하고 있는 토지를 유지하기 위해 군사적으로 재편되었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공동체를 수호하기 위해 전쟁에 동원되며 이 과정에서 일종의 전사공동체(戰士共同體)로 재편된다. 도시는 이 전사공동체의 거점지 역할을 하는 곳으로 나타나, 이 도시에 기초하여 군사공동체가 편성된다. 고전고대(그리스로마) 시기 공동체 구성원 간 자유와 평등은 이 군사공동체로서의 공동체의 재편 과정에서 나타난 것으로, 앞선 모임에서 계속하여 언급했듯이 일종의 군사민주주의(軍事民主主義)적 성격을 띄고 있다.

앞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철학을 살펴보았을 때, 도시국가(polis)의 스케일에서 논의가 이뤄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로마 공화정은 실제로 제국(帝國)의 형태로 나타났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정치를 설파하며 이상적 폴리스를 이야기한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 이유를 노예제라는 토대에서 찾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공동체가 재생산된다는 것은 확대재생산을 의미한다. 공동체가 제대로 기능하여 그 스스로를 재생산해내는 것에 성공한다면, 필연적으로 인구는 증가하고 그 공동체의 규모는 커지게 된다. 앞서 이야기한 노예주, 노예제 소경영역시도 자신의 존립을 위해 노예를 사회의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계속해서 유입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사회 내부로부터 노예의 유입, 즉 동일한 사회 구성원의 예속화(隸屬化)는 동등한 시민적 관계에 기초한 전사공동체의 유지를 위해서라도 지속가능할 수 없다. 일찍이 공동체의 구성원을 노예화하지 않는 사회적 기제의 도입은 그리스의 솔론에 의해 이뤄진 바 있다. 공동체가 재생산되고 노예제가 발달해갈수록 외부로부터 노예와 부를 유입시키기 위한 식민전쟁은 상시화되고, 공동체는 보다 강고하게 군사적으로 재편된다.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로마의 제국으로의 이행은 이런 단계를 거쳐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제국(帝國, Empire)이란 무엇일까?: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라는 정의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중해 세계를 제패한 공화정 로마도 역시 제국이라 칭해지듯, 제국은 반드시 황제라는 존재를 전제하고 있는 개념이 아니다. 제국이라는 말 자체는 명령권이나 통치권을 의미하는 ‘Imperium’에서 온 것으로, 나중에는 그 지배가 미치는 영역도 의미하게 되었다.(황제란 본래 임페리움을 보유한 자를 뜻한다.) 그렇다면 왕국과 제국의 차이는 무엇인가? 왕국이 다른 왕국의 존재를 전제하는 것과 달리, 제국은 하나의 문명 아래 통합된 세계 전체를 가리킨다. 따라서 제국은 그 아래에 여러 민족이나 국가를 두며, 광대한 영역을 일원적으로 지배한다. 이런 규정 속에서 제국 바깥의 영역은 문명이 미치지 않는 야만의 땅으로 여겨진다. (우노 시게키)

 

정치가이자 철학자로서의 키케로

로마의 정치관련 저술가들: 카이사르Caesar(100-44 BCE), 살루스티우스Sallustius(86-35 BCE), 타키투스Tacitus(56-120), 후대의 마키아벨리에게 중요한 티투스 리비우스Titus Livius(59 BCE- CE 17), 플루타르코스Ploutarkhos(46-120), ‘왕좌에 앉은 철학자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nus(161-180).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106-43 BCE)는 로마의 정치가, 연설가이고 철학자. 헬라스적 사유를 로마의 사상 자산으로 수용. 폭넓은 라티움어 번역과 개념화를 통해 헬라스에서 시작된 철학을 로마화하는 작업을 완성 단계로 끌어올림. 저술한 대화편에는 플라톤적 아카데미아, 아리스토텔레스적 페리파토스학파, 에피쿠로스주의, 스토아주의 등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헬라스적 선례의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그 핵심에는 로마적 인간, 정치적 인문주의가 문학적 형태로 형상화되어 있다.

로마에서의 학업과 유학을 마치고 신인新人’(homo novus, 귀족 가문 출신이 아니면서도 고위관료에 올랐던 신흥 세력)에 해당하는 인물로서 여러 관직을 거쳐 집정관(Consul)이 되었다. 카틸리나 모반 사건을 제압하여 명성을 얻었으나 정적 카이사르와의 대결 국면에 들어섰다. 카이사르 사후 공화정 복원에 힘쓰다가 안토니우스 일당에 의해 살해되었다.

플라톤의 저작들을 모방한 국가론(De re publica)법률론(De legibus)은 키케로의 특징이라 할 로마적 탁월함을 통해 헬라스 철학을 향상시켰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국가론은 실현되기 어렵지만 이상적인 국가를, 법률론은 차선이지만 이상적인 현실 국가를 다루고 있다.

카틸리나 탄핵 연설문 네 편 등이 포함된 연설가에 대하여, 윤리와 정치의 연관성에 놓인 최고선악론, 의무론도 정치적 저작이라 할 수 있다.

키케로는 헬라스 어(통용어인 koine)를 완벽하게 구사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대의 헬라스 문화 전체를 소화하여 라틴화함으로써 라틴 헬레니즘’(헬라스 식 로마 문화)의 완성자가 되었다. 키케로 이후 로마의 헬라스 어 지식은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위기의 3세기’(235년 세베루스의 피살) 이후 동·서가 분리되었다. 분리된 지역의 서쪽 지역에서는 라티움 어 문화가, 동쪽 지역에서는 헬라스 어 문화가 자리잡았다. 이는 이후 초기 기독교의 교리 논쟁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동서 로마 지역의 대화불가능 사태로 이어진다.

 

✶ ⟪국가론

국가론(‘공동의 것에 대하여’)은 철학적이면서도 역사적이며 현실정치를 염두에 둔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대화의 주요 화자이자 주인인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Scipio Aemilianus(185-129 BCE)는 키케로가 생각한 이상적인 삶, 즉 헬라스적 정신 속에서 성장하였으되 로마적 지혜와 정치적 탁월함을 갖춘, 로마 공화정의 정치적 정신적 문화의 정점으로 여겨진 인물이다.

국가론은 모범이 되는 정치공동체에 관한 세 가지 과제를 다룬다: 이상적인 국가 정체(1-2), 정체의 법적 윤리적 기초(3-4), 이상적인 정치가(5-6). 각 주제를 시작하기 전에 키케로는 자신의 서문을 붙였다.

첫째 서문: 도입부이자 전체 내용을 포괄. 활동적 삶, 즉 시민의 행복을 위해 몸을 바치는 정치적 삶에 대한 논의.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앎을 추구하는 관조적 삶을 정치적 삶보다 더 나은 것이라고 주장.

1: 공동체, ‘res publica’를 인민의 것과 동일한 것으로 놓고 그것을 공통의 법과 이익에 근거하여 규정. 이상국가에 대한 이론적 준-선험적 정당화. 최상의 정의에 관한 논의.

공동체인 사회를 이루려는 충동은 인간의 약한 측면이 아니라 본성적이고 자연스러운 충동이다.

공동선을 위한 세 가지 좋은 정체: 군주정에서는 신민에 대한 자애, 귀족정에서는 최고로 훌륭한 사람의 통찰력과 조언, 민주정에서는 인민의 자유가 기준. 각 체제의 약점으로는, 군주정은 신민이 국가 대소사 결정에 제외되어 있다는 것, 귀족정은 적은 정도의 자유만 허락된다는 것, 민주정은 각각의 가치에 따른 차별화가 불가능. 참주정, 과두정, 다수의 폭정으로 변질될 위험

혼합정체: 시민 공동체에서 시행되는 결정권한의 분립을 중요한 것으로 간주. 이는 상호견제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일치와 사회적 통합을 위한 것.

2: 이상국가의 특징들이 로마 공화정에서 실현된 과정

예상 독자는 로마의 예비 정치가들이므로 정치이론뿐만 아니라 로마의 전통적 관습과 제도, 로물루스Romulus와 레무스Remus의 건국부터 혼합정체로서의 이상적 질서를 갖춘 공화정 출현까지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취급. 1)인민이 정상적 법적 절차에 호소함으로써 공직자의 자의적 판단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었고, 2)인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호민관 제도가 있었으므로 로마 공화정은 과두정이나 금권정치가 아니라 민주정의 요소가 있었다고 주장.

로마 공화정은 이상의 실현태였으나 현실적으로는 원로원에 큰 비중을 두었다. “자유로운 인민들에 의해서는 아주 적은 것만이, 그리고 대부분의 것은 원로원의 권위에 의해”(국가론, 2.32.56) 정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3: 정의의 개념에 대한 논의. 정치에서의 정의의 가능성에 대한 옹호, 반박 논쟁. 아카데미아의 수장인 퀴레네의 카르네아데스Carneades의 로마 사절단 활동을 배경

필루스Philus는 법실증주의와 국가실증주의의 입장을 취한다. 카르네아데스가 했다고 전해지는 연설의 내용에 따라 정치에는 항상 부정의가 필요하다고 주장. 올바름()은 불변적 본성을 가진 것이 아니므로 관습(규약)에 속할 수밖에 없다. ‘카르네아데스의 널빤지이야기에 따르면 정의로움과 영리함이 상충하는 상황에서는 목격자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 부정의가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또한 왕정-참주정, 귀족정-과두정, 자유로운 인민의 지배-인민의 임의적 지배와 같은 구분은 우스운 것이다. 소유한 재산이나 타고난 혈통에 따라 지배권이 주어지는 곳에는 패거리가 있을 뿐인데도 그들이 최선자라 불리는 것은 이름만 그러할 뿐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해적의 대화도 이를 뒷받침한다. 해적은 자신이 하는 일은 커다란 함대를 가지고 온 세상을 불안하게 만드는 당신과 다르지 않다고 대답한다. “권력은 더 크게, 부는 더 많이, 땅은 더 넓게 가질 수 있는 영리함”. 개인에게나 한 민족에게나 중요한 것은 , 권력, 영향력, 명예로운 지위, 명령권, 지배할 수 있는 자격”(국가론, 3.15.24)이다. 지혜로운 사람이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정의롭기 때문이 아니라 공포, 염려, 흥분과 위험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국가론, 3.16.26)이다.

라엘리우스Laelius는 온건한 법도덕주의와 국가도덕주의의 입장에 선다. 그는 필루스의 연설이 매우 설득력 있었고, 정의가 실패한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불의에 굴복해야 하는가를 논증한다. 다섯 가지 원리: “진정한 법률은 본성과 조화를 이루고, 모든 이에게 고루 분배되어 있으며, 불변하고, 영원한 올바른 이성이다.”(국가론, 3.22.33) 추가된 세 가지: 1)어떤 다른 이유나 명분, 기준도 없이 인간이 진정한 법률을 지키지 않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 2)인간에게는 진정한 법률을 설명할 해석자가 필요하지 않다. 3)법률을 가르치는 교사이자 주관하는 지배자는 신뿐이다. 자연법에 대한 고전적 규정

자연법에 대한 반박은 로마 사상의 지평에서 보면 신성모독으로 간주되었다. 조국을 위한 애국주의적 도덕화가 철학적 논증을 대신한다. 법이론적으로는 법도덕주의에 상응하며 법실증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실정법은 자연과 이성에 합치할 때에만 비로소 (올바름)’일 수 있다.

정당한 전쟁: 전쟁은 반드시 사전에 고지되어야 하고, 사전에 선포되어야 하며, 승리한 쪽은 패배한 쪽에 금전적 배상 이외의 다른 처벌을 내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키케로는 로마의 패권이 정당한 전쟁의 형식적 최소 요건도 지키지 않고 순전한 권력의 확장과 다를 바 없는 현실을 외면하고 본성적으로 가장 훌륭한 자에게 지배권이 주어지는 것이 그에 못 미치는 자들에게도 최대의 이익이 되기 때문에”(국가론, 3.24.36) 이민족이 로마의 속주가 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고 믿었다.

3권을 마무리하는 스키피오의 연설: 정의는 국가 자체를 규정하는 근본원리이다. 따라서 타락한 정체는 결코 국가가 아닌것”(국가론, 3.31.43)이다. 진정한 국가는 네 가지 조건, 1)인민은 억압받아서는 안된다, 2)법공동체여야 한다, 3)인민의 동의, 4)사회적 연대가 갖추어져야 한다.

4: 인민의 양육과 교육. 플라톤의 시가詩歌 비판 수용. 로마의 전통적 윤리 규범과 관행에 대한 칭송. 전통적 가족의 가치 강조, 예의범절과 신의(fides), 존엄함(dignitas)을 갖춘 덕(virtus)

5, 6: 이상적인 정치가에 대한 논의. 지배자는 지혜롭고 정의로우며 신중한 품성을 가져야 하며 무엇보다 언변이 좋아야한다. 이는 쉽고 유창한 연설로 인민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잘 이끌고 갈 수 있기 위해서”(국가론, 5.1.2)이다.

 

간략한 요약

키케로는 인간이 조국으로부터 더 많은 은혜를 입는다고 보았고 그 관점에 따라 실천철학의 최종 목적은 인식이 아닌 행위(니코마코스 윤리학, 1권 제1)라고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 사유를 구현하려 하였다.

키케로는 혼합정체를 선호하며 군주정이나 귀족정에 민주정의 요소를 도입할 것을 주장한다.

국가론의 개념규정은 정치학의 개념규정(1권 제21253a 16-18)만큼이나 영향을 끼쳤다. “국가(res publica)는 인민의 [공동의] 것인데, 여기에서 인민이란 그저 한데 모여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합의에 의해 하나의 법 공동체를 이루어 공동의 이익을 통해 상호결합되어 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국가론, 1.25.39)

스키피오의 꿈을 통해 키케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다른 방식으로 강조한 정치와 윤리의 합일을 추구하며 그러한 합일은 유사종교 수준으로 높여진다. 정의로운 사람에게는 현세에서의 즐거움보다도 내세에서의 더 큰 즐거움, 즉 불멸성으로부터 오는 즐거움이 주어질 것이다.

활동적 정치가로서 살았던 국가이론가 키케로가 당대 로마의 상황을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순전한 철학자로서 플라톤이 현실에 대한 급진적인 변화를 요구했던 반면, 키케로는 로마의 전통을 칭송했으며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 ⟪법률론

플라톤의 법률을 본받아 철학과 신학, 역사, 교육학, 법에 대한 논의를 하나의 대화 안에서 엮어 제시하려 했으나 근본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플라톤이 근본적인 논의를 바탕으로 가상적인 차선의 공동체에 필요한 법률을 논의했다면 키케로는 로마가 이미 훌륭한 공동체라고 생각하였으므로 이상적인 새로운 법률을 논의할 필요가 없었다.

1: 자연법을 비롯한 법철학적 질문. 헬라스와의 경쟁의식

법률은 최고의 이성, 자연에 내재한 이성이다.(법률론, 1.6.18) 또한 법의 기원은 인간 본성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이성과 사유능력에 있다.

인간학적 자연법 사상: 인간은 본성 안에 모든 생물에 우선하면서 신들과 가장 가까운 존재가 될 수 있는 우월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윤리적 자연법 사상: /권리/올바름은 객관적이고 본성상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윤리적 선안에 있다. 정의로움과 그 자체로 추구할 만한 다른 덕 안에 법/권리/올바름이 존재하는 것이다.

2: 철학적 종교론의 기본원칙

3: 국가 및 정체에 대한 법을 다루면서 정무관직의 본질과 필요성, 지위와 기능. 헬라스와 로마의 헌법과 역사. 로마의 제도에 대한 논평. 혼합정체에 도입되어 있는 호민관 제도의 중요성 강조

4~6: 전해지지 않는 부분. 4권에서는 재판과 형법을 비롯한 공법, 5~6권에서는 민법을 다루었을 것이라 추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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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QR(Senatus Populusque Romanus, 로마의 원로원과 인민)

원로원은 왕들에게 조언하던 귀족협의회에서 발전한 제도. 중요한 결정 사항들은 항상 원로원에서 먼저 토의했으며, 원로원은 특별히 대외 정책, 민사 행정, 재정을 감독. 원로원이 제안한 결정 사항들은 공화정 체제의 세번째 요소라 할 수 있는 민회가 확인해야했다.

민회는 법률을 승인하고, 1년 임기의 모든 행정관을 선출했다. 로마에는 몇 가지 서로 다른 형태의 민회가 있었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켄투리아(백인회)와 평민였다. 켄투리아 회는 집정관과 법무관을 선출했고, 전쟁을 선포했다. 평민회는 호민관을 선출했고, 호민관들이 제안한 의결 사항을 통과시켰다. 이러한 민회들은 이론상으로는 최고권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원로원의 지도를 따랐다. 민회를 소집한 행정관은 이미 원로원에서 토의된 문제들만을 민회에 제안했으며, 민회는 거의 항상 원로원의 결정을 승인했다. 이것은 통치에 있어서 모든 시민의 발언권을 인정해주지만, 실제 통제권은 귀족이 장악한 고도로 세련된 체제였다. 원로원과 인민이 공화정을 통치했으나, 확실히 우위에 있던 쪽은 원로원이었다. 원로원의 권위”(’권위를 지닌 질서’)

경쟁심이 강하고, 호전적인 원로원 엘리트들이 이끄는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에서 지배 세력이 되었고, 나아가 더 넓은 지중해 세계를 제패했다. 이것은 로마에 승리를 가져다주었으나, 동시에 로마 몰락의 원인이 되었다. 제국을 건설한 정복 과정에서 압력이 발생하였고, 공화정 구조로는 이를 결코 이겨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카틸리나 사건: 키케로가 집정관을 하던 시기 원로원을 움직여 카틸리나 유죄판결을 받아내자 카틸리나는 로마로 달아나 군대를 규합했다. 그가 없는 동안 키케로는 원로원을 설득해 체포한 공모자들을 즉결 처형해도 좋다는 동의를 얻어냈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명백히 불법이었다. 원로원은 죄수를 처형할 권한이 없었던데다,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은 판결과 처형이었기 때문이다. 카틸리나의 군대가 키케로의 군대와 충돌했을 때 그는 휘하 병사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수많은 적병들에게 포위된 채 용감히 싸우다 전사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한 사람들은 포풀라레스populares라고 불리는 가난한 로마인들의 지도자들이었다. 카틸리나는 그들의 채무를 탕감해주고 지지를 얻어냈다. 키케로는 채무 탕감이나 재산 평등화 조치에 반대하는 상류층의 옹호자, 옵티마테스에 속했다. 키케로는 로마의 곤경이 그라쿠스 형제가 빈민을 위해 토지개혁을 하면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보수파였으며 그라쿠스 형제의 암살범을 찬양했다.

 

혼합정체론

아리스토텔레스가 혼합정체를 이상적 정체로 설파하고, 플라톤도 법률에서 그러하였듯이 키케로 역시도 그러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차이가 있다. 앞선 두 학자는 현실 정치를 비판하며 보다 개혁적인 사상을 설파한 반면 키케로는 이미 현실에 나타난 로마 공화정을 이상적인 정체로 이야기하며 비교적 보수적인 입장을 내보인다. 키케로의 정치사상은 로마의 정치적 전통을 계승하며, 그것을 헬레니즘의 스토아 학파 사상과 연결하려는 시도였다. 공화정-정치가-자연법(스토아 학파)

최상의 정체는 하나의 형태를 가지는 제도 안에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의 요소가 혼합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확대된 귀족정”(엄격하게 제한된 민주정’)의 성격을 띤다. . 이는 귀족정에 비해 능력있는 평민을 더 배제하고 민주정에 비해 무능력자를 덜 허용하지만 변혁을 회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혼합물은 그것의 구성요소들 각각보다 강력하다는 일반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러한 일반론적 사상에는 문제가 있다. 최선의 경우에는 견제와 균형, 결단력, 전문적 식견, 상식과 충성이 형성되지만 각 요소들의 결점이 결합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가 바로 그것이다.

폴뤼비오스의 순환론: 폴뤼비오스는 스파르타의 예를 들며 정체가 순환 구조속에서 논리적으로 전개된다고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키케로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키케로는 정체순환에 논리구조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연한 순환의 고리보다는 제 멋대로 굴러가는 공과 같은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로마는 역사 속에서 시행착오와 내전을 거치면서 혼합과정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귀족은 세습권력을 포기하고 집정관은 왕정의 요소를, 민회는 민주정의 요소를 가지게 되었다. 건강하게 세워진 스파르타와 달리 취약함 위에 세워진 로마가 비로소 위대함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폴리스에서 로마 공화정, 로마 제국으로: 새로운 정치적 범주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정치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고전적 정치사상에서 벗어나 용납될 수 있는 정치적 갈등의 한계라는 문제, 이런 갈등을 봉합하고 규제하는 데 있어서 제도가 수행하는 역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익에 근거하여 정치를 수행하는것로마 공화정에서 로마 제정으로의 이행은 이처럼 새롭게 등장한 정치적인 것에 대한 통찰의 계기를 준다.

공간의 새로운 차원: ‘폴리스와 관련된것들, 폴리스가 더는 유일하게 정치적으로 중요한 단위일 수 없다는 사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공간 이해: “우리는 이러한 성격을 좋은 평판을 받고 있는 헬라스인들의 폴리스들과, 또한 민족으로 나눠진 바 사람이 거주하는 전체 세계를 살펴봄으로써 아주 충분하게 파악할 수 있다. 추운 지역에 있는 민족들, 특히 에우로페(유럽)의 민족들은 기백(thymos)은 충만하나 지성(dianoia)과 기예(tekhnē)는 부족하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비교적 자유로움을 지속할 수는 있으나, 비정치적(apoliteuta)이고 자신들의 이웃을 지배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시아의 민족들은 지성적 영혼과 기예에서는 숙련되어 있으나, 기개는 부족하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지속적으로 지배당하고 노예로 머무는 것이다. 그러나 헬라스의 종족은 중간 지역을 점유하고 있듯이, 그와 같이 그 양쪽의 기질을 공유하고 있다. 그들은 기백도 있고 지성적이니까. 이러한 이유로 지속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고 최선의 방식으로 통치될 수 있으며, 만일 단일한 정치체제(mia politeia)를 성취한다면 다른 모든 폴리스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헬라스의 민족들은 서로에 대해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차이를 가진다. 왜냐하면 어떤 종족은 일면적인 본성(기질)을 갖고, 반면에 다른 종족은 이와 같은 능력의 양쪽 기질이 잘 혼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7권 제7, 1327b 22-35)

용납될 수 있는 정치적 갈등의 한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사상의 바탕에 놓인 근본적인 전제는 잘 짜인 작은 공동체에 대한 전적인 몰입이다. 특히 플라톤은 민주주의의 극단적인 사회적 유동성, 거기에서 발생하는 파괴적인 에너지의 분출, 불안정성을 정치적 정치적 삶의 영구적인 속성으로 만드는 것처럼 보이는 추첨과 선거제도에 관해 명백히 그리고 심층적으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이에 따라 플라톤의 해결책은 밀집된 정치적 조건에서 감당할 수 없는 소란스러운 무정부 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의 하나로 형성되었다. 각 계급이 수행해야 할 기능을 명백히 규정하고, 한 계급에서 다른 계급으로의 이동을 저지함으로써 정치적 공간의 새로운 구조는 임의적인 이동들로부터 보호될 것이었다.”

스토아학파: “정치적 삶이 마치 우주적 세계 그 자체처럼 광활한 배경을 무대로 전개됨에 따라, 스토아학파는 여유를 갖고 그리고 강한 긴장감없이, 정치적 삶을 관조했다.” 평등, 자유, 인간의 존엄이라는 관념을 제시하기는 하였으나 그것이 새로운 정치적 공간에 대한 구성원들의 소속감을 고취시키고자 하는 자각에서 등장한 것은 아니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적 세계관은 진정으로 정치적인 질서의 본성에 관한 긍정적인 견해가 아니라 그것이 불충분하다는 결론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스토아학파의 목표는 정치 밖에 놓여 있는 사회를 지향했다.” 이는 진정한 정치적 사회에 관한 이념이 아닌 공허한 코스모폴리스주의에 불과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참으로 완성된 인간은 폴리스에서만 가능했으며 그런 점에서 헬라스의 paideia는 폴리스라는 조건 속에서만 성취되는 교양인 반면 스토아적 humanitas는 그런 제약을 벗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로마 공화정과 제정이 드러낸 정치사상의 단초들

제도가 수행하는 역할: 정치가 제도적 형태를 통해 수행될 때 가능한 리더십을 관직의 사다리로써 보여주었다. “리더십을 이미 확립된 제도적 규정에 순응해야 하는 정치적 활동으로 보았다.”

우리나라는 한 사람의 재능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수에 의해서, 한 사람의 생이 아니라 여러 세기와 세대에 걸쳐서 구성되어 왔던 것이지요.”(키케로, 국가론, 2.1.2)

인민은 막연하게 지역구별로 소집하는 편보다는 납세, 반열班列, 연령을 기준으로 구분되는 편이 투표에서 좀더 큰 분별력을 행사하지.”(키케로, 법률론, 3.9.44)

이익의 정치: “국가는 인민의 것이다. 인민은 다수가 합의된 법과 공동의 이익으로써 연합된 집단이다.”(키케로, 국가론, 1.25.39) “모든 사람이 동등한 것을 향유하는 국가에서 화합이 가장 쉽게 이루어질 수 있으되, 다른 것이 다른 사람에게 이로울 때는 이익의 상이함들로 인해서 불화가 생기고, 귀족들이 국가를 장악할 때는 결코 나라의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며, 이제 왕의 치하에서는 더더욱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나라란 시민들의 권리의 결사체가 아니라면 무엇이겠습니까?”(키케로, 국가론, 1.32.49)

이익의 정치가 지닌 한계: 제국의 팽창, 엄청난 부의 로마로의 유입, 정치적 야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무한한 기회는 정치과정을 격렬하게 만들었고, 사람들이 전통적인 제약이나 관행적인 절차를 성가신 것으로 여기게 했으며 그에따라 관직의 사다리가 무시되었다. 이익이라는 동기가 정치에 진입하도록 허용될 때, 진정한 위험은 이른바 물질적 목표의 추구에 따른 도덕적 타락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위험은 정치가 전적으로 이익의 추구로 환원되었을 때, 곧 의무라고 하는 규제적인 기준이 전혀 인정되지 않을 때 밀어닥친다.

 

키케로가 후대에 끼친 영향

키케로주의자는 없다. 즉 근본적으로 새롭고 독창적인 사유를 내놓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선행하는 사상들을 요약해서 제시한 그의 능력은 문헌으로 전해지지 않는 사상들에 대해 알려주는 바가 컸으며 그에따라 계몽주의 시대에 들어 가장 높이 평가받는 사상가로 여겨졌다.

키케로 이전의 사상, 특히 정치사상, 법철학, 국가철학은 그가 전해 준 방식에 따라 서양 사상의 토대에 자리잡았다. 이 분야와 관련된 키케로의 사상은 그에 앞서 제시된 해결책들 보다는 문제설정의 측면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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